<왕오천축국전> / 차주일/ 《현대문학》 2005년 3월호
왕오천축국전
삼보일배 걸어오르던 감이파리, 불씨 하나 뜸뜬다. 천상에 다다르
기에는 아직 먼길, 땡볕 얼려 그늘 펴던 온몸 불태우기로 한다. 한
이파리 태우는 힘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천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감이파리가 낙엽으로 내딛는 동안 허공은 온전히 탄 걸음에게만 길
을 허락한다. 이윽고 이파리들이 걸음을 모두 거두고 떠났을 때, 길
은 천상에 이르러 사리 같은 까치밥 하나 굽고 있었다. 그 길에서 뻗
어난 수천의 곁길들이 허공의 벼랑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길 잃은
새들이 합장하듯 내려와 길을 움켜잡고 혜초의 붉은 살을 쫀다. 길은
바람을 잡아먹고 새들보다 먼저 허공 한 장을 넘긴다. 새들 날아간
길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다.
[감상]
1200년 전 인도, 중앙아시아를 다녀온 여행기가 왕오천축국전이지요. 이 시는 감이파리 낙엽을 태우는 풍경을 통해 혹독한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상상력에 힘이 있습니다. 감이파리 하나가 나무에게서 자라나 낙엽이 되고 다시 재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은, 귀로길에 오른 혜초가 파미르고원을 앞두고 읊은 ‘길은 험하고 눈 쌓인 산마루 아스라한데… 평생 눈물을 훔쳐본 적 없는 나건만/ 오늘만은 하염없는 눈물 뿌리는구나’의 시처럼 아스라해집니다. 단단한 문장과 산문시다운 간결한 호흡도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