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왕오천축국전 - 차주일

2005.03.03 09:53

윤성택 조회 수:1198 추천:191

<왕오천축국전> / 차주일/ 《현대문학》 2005년 3월호

  왕오천축국전

  삼보일배 걸어오르던 감이파리, 불씨 하나 뜸뜬다.  천상에 다다르
기에는 아직 먼길,  땡볕 얼려 그늘 펴던  온몸 불태우기로 한다.  한
이파리 태우는 힘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천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감이파리가  낙엽으로 내딛는 동안 허공은 온전히 탄 걸음에게만 길
을 허락한다.  이윽고 이파리들이 걸음을 모두 거두고 떠났을 때, 길
은 천상에 이르러 사리 같은 까치밥 하나 굽고 있었다. 그 길에서 뻗
어난  수천의 곁길들이 허공의  벼랑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길 잃은
새들이 합장하듯 내려와 길을 움켜잡고 혜초의 붉은 살을 쫀다. 길은
바람을 잡아먹고  새들보다 먼저 허공 한 장을  넘긴다.  새들 날아간
길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다.

[감상]
1200년 전 인도, 중앙아시아를 다녀온 여행기가 왕오천축국전이지요. 이 시는 감이파리 낙엽을 태우는 풍경을 통해 혹독한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상상력에 힘이 있습니다. 감이파리 하나가 나무에게서 자라나 낙엽이 되고 다시 재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은, 귀로길에 오른 혜초가 파미르고원을 앞두고 읊은 ‘길은 험하고 눈 쌓인 산마루 아스라한데… 평생 눈물을 훔쳐본 적 없는 나건만/ 오늘만은 하염없는 눈물 뿌리는구나’의 시처럼 아스라해집니다. 단단한 문장과 산문시다운 간결한 호흡도 인상적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71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3] 2005.01.27 1331 220
470 블루스를 추고 싶다 - 함태숙 2005.02.01 1150 196
469 겨울판화 - 정주연 2005.02.03 1296 192
468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 박후기 2005.02.04 1248 168
467 물방울 송곳 -안효희 2005.02.14 1257 183
466 침몰 - 서동인 [1] 2005.02.16 1293 189
465 상계동 비둘기 - 김기택 2005.02.23 1126 163
464 오토바이 - 이원 2005.02.24 1231 181
463 위험한 그림 - 이은채 [1] 2005.02.25 15698 191
462 활엽 카메라 - 김정미 [1] 2005.02.28 1259 217
» 왕오천축국전 - 차주일 2005.03.03 1198 191
460 방안에 핀 동백 - 홍은택 2005.03.07 1190 177
459 사랑 - 고영 [5] 2005.03.08 2366 219
458 그녀의 꽃밭 - 유미애 2005.03.11 1562 202
457 줄 - 이명훈 2005.03.15 1219 198
456 죽순 - 이병일 [1] 2005.03.17 1236 195
455 봄볕을 두드리다 - 고명자 2005.03.18 1726 185
454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을 맞은 이종욱에게 - 이종욱 2005.03.21 1054 186
453 복덕방 노인 - 조영석 2005.03.22 1144 188
452 기발한 인생 - 정병근 2005.03.24 1468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