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 핀 동백> / 홍은택/ 《현대시학》 2005년 3월호
방안에 핀 동백
겨울이 가기 전에 꽃피고 싶었다 꽉 다문 잇새로 아뜩한 어지럼증이 새나왔다
이 방을 떠나야 한다 냉골의 장판에 싸늘한 몸을 세우려는 순간, 방안의 가구들
이 휘잉 돈다 채로 휘갈긴 팽이처럼 내 몸이 돈 것도 같다 몸 속에 붉게 피멍드
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캄캄한 방, 사방 벽에 별들이 돋아 무서운 속도로 돌
고 있다
춥다 지상에 서있는 것들 모두 이 어지럼증을 견디고 있나 눈을 감아야 환히
보이는 회전의 관성, 너를 중심에 두고 내가 도는지 내 속을 들여다보며 나 스스
로 도는지 문밖 바람이 채찍으로 내 정신의 몸통을 후려갈긴다 정수리 끝으로
몰리는 피, 핑그르르 원심분리 파편으로 피는 붉은 꽃잎들!
[감상]
방안 동백이 꽃 피는 과정을 강렬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입니다. ‘팽이’로 비유되는 원심력이 이 시의 주된 흐름인데, 싱싱한 상상력인 만큼 ‘붉은 꽃잎들!’로 점철되는 힘이 놀랍습니다. 갑갑한 방안을 우주로 환치하는 것이나, 동백으로 자아를 동일화시키는 감정이입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