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꽃밭> / 유미애/ 《시와사람》 2005년 봄호
그녀의 꽃밭
- 여신들
밤이면 여자의 몸에 불이 들어온다 찌륵찌륵 피어 우는 300만 화소의 도시 어떤 빛보다
선명한 꽃무늬 화인 배꼽 밑 라벨을 건드리면 발끈 흥분하는 그녀 포장된 유리 상자 속 시
니컬한 여자의 봉오리를 부풀리는 건 혁명 없는 골목의 변종 나비들
깜박거리던 여자의 허벅지에 홍등이 들어온다 단명의 꽃들로 끝없이 유린 당해온 슬픈
꽃대 길가다 어떤 향기를 맡게 된다면 당신은 신의 꽃밭을 지나는 중이다 짓이겨진 흉터
에 약을 바른 여자가 늑골 속 비단 그늘을 펼치는 순간 화분이 시작된다
누구든 그녀를 꽃 피울 수 있다 언젠가 당신의 은밀한 욕망을 열매로 맺은 적 있는 내 캄
캄한 씨앗을 슬쩍 부려 놓고 싶은 말랑말랑 단단한 그녀의 이랑
[감상]
신화의 ‘여신’이라는 원형을 낯선 이미지로 바꾸는 패기가 돋보입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에서 어쩌면 홍등가야말로 욕망의 군상들이 가꾼 꽃밭일지 모릅니다. 짧은 청춘을 담보로 유린되는 ‘단명의 꽃들’은 한때 아름다운 여신이었을 것입니다. 발랄한 상상력에다가 시원시원한 흐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