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 이명훈/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
줄
고층유리 닦는 남자가 내려온다
전기줄이 가슴께를 지난다
순간의 줄십자가
아슬하다
온몸으로 쓸고온 허공이
맑게 닦여 있다
살아있는 시체 하나
조심조심 십자가를 내려오고 있다
바라보거나 들여다 볼 수 없는 창
수직의 매정한 단면이 그의 길이다
전기줄이 유리를 자르고 있다
[감상]
고층 빌딩에서 아슬아슬하게 유리를 닦는 사람을 올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줄 하나에 의지해 온몸으로 건물의 광을 내는 사람. 줄이 끊기면 곧바로 시체가 될 수 있는 아뜩함. 그래서 유리를 닦는 남자는 제 생의 벽화를 그리는지도 모릅니다. 주제설정의 배경과 깊이 있는 시선이 눈길을 끄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