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를 치다> / 정병근/ 《문학과지성사》 시인선(근간)
기발한 인생
명절도 아닌데 막히는 길 어찌 알고
차들 새를 비집고 다니며 뻥튀기나 오징어를 팔고 다니는
저 남자의 인생을 나는 알고 있다
불과 5분 사이에 그는 나타났다
어디에서 왔다기보다는 그냥 불쑥 출몰했다
그는 한때, 시덥잖은 마술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회충약을 팔았거나 살모사의 꼬리를 슬슬 당기며
정력제를 팔았거나 이상한 씨앗들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물을 펄펄 끓였으며 관광버스에 올라와
당첨된 금시계를 나눠주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내게 불쑥,
밍크코트를 내밀지는 않았던가
맑은 날에는 장작불에 닭을 구웠고
비가 오면 어느새 그는 우산 장수가 되어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의 호주머니를 후려내던 야바위꾼이었으며
비장의 한 수를 유혹하던 박포장기였다가
최근엔 도청 장치 사기도박으로 쇠고랑을 찬 적도 있다
그에게 나 같은 인생은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그는 요리조리 잘도 피하고 도망다니면서
언젠가는 보란 듯이 한밑천 잡고 말 것이다
비장의 무기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면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그는 언제든 출몰할 태세가 완비되어 있다
[감상]
이 시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한 인물의 ‘남자’로 만들어내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과거와 사연은 이 시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출몰’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무료함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러한 광경을 접하다보면 이 시처럼 ‘기발한 인생’이 누구였을까 싶어집니다. 사기치고 사기당하고 쫓고 도망치고, 그런 사람으로 인해 부대끼며 사는 이 세상 우리의 존재가 확인되는 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