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 2>/ 문태준/ 《문학사상》2005년 9월호
극빈 2
- 독방(獨房)
칠성여인숙에 들어섰을 때 문득, 돌아 돌아서 독방(獨房)으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한 칸 방에 앉아 피로처럼 피로처럼 꽃잎 지는 나를 보았다 천장과 바닥만 있는 그만한 독방에 벽처럼 앉아 무엇인가 한뼘 한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흘러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창 공용버스터미널로 미진양복점으로 저울 집으로 대농농기계수리점으로 어둑발은 내리는데 산서성의 나귀처럼 걸어온 나여,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꽃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도 오늘은 아주 식물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감상]
독방의 화분 하나, 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렇게도 풀어낼 수 있군요. 여인숙을 구치소처럼 한 사람을 수용하는 방으로 바꿔내고, 꽃의 부분들을 화자와 일체시키는 흐름도 남다릅니다. 3연에 <산서성의 나귀>가 나오는데 산서성이 중국 고산지대라는 것보다는, 포송령이 산서성 주변의 이야기를 채집한 귀신 이야기《요재지이》에 등장하는 나귀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의 독특한 점은 4연에서 식물에 이입되는 몸의 형상화에 있는데, 이처럼 추상을 구체화 할 수 있는 묘사가 색다릅니다. 독방의 식물로 인해 안과 밖, 세계와 자아로 터져 있는 풍경이 시원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