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 정용기/ 《화요문학》2005년 가을호
분갈이
1
가구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비좁아진다
바깥에서 묻혀 온 먼지들은
햇빛도 안 닿고 통풍도 안 되는
가구 뒤편 어둠 속에서 곰팡이가 되어
마음속까지 포자를 번식시킨다
잠 속에서도 길이 툭툭 끊어진다
2
퇴근 후 나를 숨기고 있던 먼지 묻은 옷을 벗으면
정전기가 탁탁 전보를 친다
팔 뻗은 안테나들이 가리키는 쪽
붐비는 별자리들의 회로를 타고 왔을까
별들의 추파로 마음이 따끔거린다
3
이제는 많이 스러져 버린,
신혼으로 설레던 그릇과 수저들의 빛깔은
세월의 밑바닥에서
결 고운 추억의 지층이 되어
내 발바닥을 데우고 있으리라
겨우내 실내에서
건조한 내 삶의 무늬를 지켜보던 화초들
분갈이를 해야지
뿌리들이 화분 밑바닥을
서너 바퀴는 돌았을 터인데,
꽃대의 기척이
내 비좁은 마음까지 간지럽혀 오는데
[감상]
시를 읽다보면 시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있습니다. 물론 지성적으로 차가운 시도, 감성적으로 따뜻한 시도 나름대로의 장단이 있겠지요. 이 시는 일상을 포착하는 시선이 진솔하고 따뜻합니다. <가구 뒤편 어둠>을 보는 눈이 있고, 정전기에서 <별자리>의 전보를 받는 몸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뿌리들이 <화분 밑바닥을 서너 바퀴> 돌고 있는 <꽃대>의 기척을 듣습니다. 나와 타인과의 소통은 이렇듯 관심과 이해에서 이뤄집니다. 어둡고 소외된 자리를 돌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살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