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콘트라베이스 - 이윤훈

2005.12.30 10:49

윤성택 조회 수:1614 추천:232

<콘트라베이스>/ 이윤훈/ 《애지》2005년 가을호


        콘트라베이스

        광릉 숲 크낙새 나무 쪼는 소리에 그는
        새삼 제 속 텅 빈곳을 들여다보았다
        빛이 드는 창가에서 오래도록 그는
        침묵이었다
        그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한 그 속에서
        크낙새가 콕 콕
        그의 일 초 일 초를 쪼아내고 있었다
        부리 부딪는 소리가 손목에서 톡 톡 뛰었다
        톱밥처럼 날아가 쌓인 시간
        그 더미에서 생목 냄새가 뭉실뭉실 피어올라
        그를 감쌌다 그가 숨을 깊이
        들이쉬자 그의 목숨을 잡아주던 줄들이
        팽팽해졌다 그는 숨 줄을 고르고
        어둠과 빛 속을 갈마들며 활을 문질렀다
        숨어 있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제 속 텅 빈곳이 제 둥지임을 알았다
        크낙새 알같은 온음표 한 알 따습게
        생의 마지막 마디에 품고 싶었다


[감상]
콘트라베이스는 가장 낮은 음을 내는 바이올린 계통의 현악기이지요. 크기는 2m 정도여서 연주할 때는 수직으로 세워 악기를 안고 연주합니다. 이 시는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전 숨막히는 정적과 웅장한 연주를 성능 좋은 스피커처럼 들려줍니다. 악기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것도 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크낙새 나무 쪼는 소리>를 손목의 <맥박>으로 환치시키는 오버랩이 놀랍습니다. 악기의 공명통이 크면 클수록 소리는 깊어지는 법, <제 속 텅 빈곳이 제 둥지>임을 알아가는 콘트라베이스의 정체성이 아슴아슴 숲으로 데려다줍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크낙새>와 <콘트라베이스>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룬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31 담쟁이덩굴의 독법 - 나혜경 [2] 2005.12.08 1467 194
330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329 봄날의 부처님 - 김애리나 [1] 2005.12.13 1595 206
328 전생 빚을 받다 - 정진경 2005.12.20 1671 238
327 싹 - 김지혜 2005.12.27 2666 266
» 콘트라베이스 - 이윤훈 2005.12.30 1614 232
325 2006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1] 2006.01.02 2454 270
324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824 255
323 그 거리 - 이승원 2006.01.12 1938 235
322 봄비 - 서영처 2006.01.14 3275 276
321 이발소 그림 - 최치언 2006.01.18 1632 236
320 공터의 행복 - 권정일 [2] 2006.01.19 2085 254
319 강가의 묘석 - 김병호 2006.01.23 1592 255
318 목격자 - 구석본 2006.01.25 1604 194
317 가문동 편지 - 정군칠 2006.02.02 1657 229
316 섀도라이팅 - 여태천 2006.02.14 1307 220
315 빛의 모퉁이에서 - 김소연 2006.02.15 2024 228
314 떫은 생 - 윤석정 [2] 2006.02.17 1967 232
313 사랑은 - 이승희 2006.02.21 2977 250
312 총잡이들의 세계사 - 안현미 [1] 2006.02.23 1612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