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불던 집 / 장승진 / 2002 『시와시학』봄호 신인 당선작
바람불던 집
1.
매운 바람이 그해 가을을 흔들어 놓아
어머니와 누이가 주저앉는 곳을 볼 수 없었다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떠돌고 있는 피붙이들,
골목 꼭대기에서 비릿한 찬송가 들려왔다
욕할 수 없거든 차라리 찬송하고 싶어
예배가 끝나도 어머니는 내려오지 않고
비오는 일요일, 젖지 못한 것들만 혼자였다
2.
뒤집혀진 우산에서 빗물이 새고 있었다
슬픈 것들은 왜 낙차가 큰 것인지
방에 누워 종이배를 접었다 한쪽에서
물방울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쥐새끼 같은 놈
티브이가 고함을 쳤다 바람이 세게 불어 문이 열렸다
유리문밖엔 누가 서있는 것 같이 낮인데도 어두웠고
빈 바가지가 수돗가를 구르다 금가고 있었다
3.
셋방 남자는 드라마가 끝나도록
곰팡이 슨 벽지처럼 기침소리를 냈다
쥐가 문지방을 긁어댄 틈으로
아버지 입김이 웃풍을 타고 들어왔다
날카로운 구두소리 들리지 않는
단칸의 꺼져드는 방구들 아래
버들개지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감상]
비가 오려는지 온통 흐린 하늘입니다. 이런 날은 저음으로 낮게 읊조리는 시를 읽고 싶어집니다. 흑백사진 같은 우울한 가족사를 뒷배경으로 비가 내립니다. 어쩌면 드라마가 끝나도 기침소리가 계속 들릴 것 같은 이유는 삶에 중첩된 쓸쓸함이 진솔한 것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군요. 따뜻한 차 한 잔 두손으로 쥐고 가만가만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