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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불던 집 - 장승진

2002.03.15 10:30

윤성택 조회 수:1183 추천:200

바람불던 집 / 장승진 / 2002 『시와시학』봄호 신인 당선작



        바람불던 집

        1.
        매운 바람이 그해 가을을 흔들어 놓아
        어머니와 누이가 주저앉는 곳을 볼 수 없었다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떠돌고 있는 피붙이들,
        골목 꼭대기에서 비릿한 찬송가 들려왔다
        욕할 수 없거든 차라리 찬송하고 싶어
        예배가 끝나도 어머니는 내려오지 않고
        비오는 일요일, 젖지 못한 것들만 혼자였다


        2.
        뒤집혀진 우산에서 빗물이 새고 있었다
        슬픈 것들은 왜 낙차가 큰 것인지
        방에 누워 종이배를 접었다 한쪽에서
        물방울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쥐새끼 같은 놈
        티브이가 고함을 쳤다 바람이 세게 불어 문이 열렸다
        유리문밖엔 누가 서있는 것 같이 낮인데도 어두웠고
        빈 바가지가 수돗가를 구르다 금가고 있었다


        3.
        셋방 남자는 드라마가 끝나도록
        곰팡이 슨 벽지처럼 기침소리를 냈다
        쥐가 문지방을 긁어댄 틈으로
        아버지 입김이 웃풍을 타고 들어왔다
        날카로운 구두소리 들리지 않는
        단칸의 꺼져드는 방구들 아래
        버들개지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감상]
비가 오려는지 온통 흐린 하늘입니다. 이런 날은 저음으로 낮게 읊조리는 시를 읽고 싶어집니다. 흑백사진 같은 우울한 가족사를 뒷배경으로 비가 내립니다. 어쩌면 드라마가 끝나도 기침소리가 계속 들릴 것 같은 이유는 삶에 중첩된 쓸쓸함이 진솔한 것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군요. 따뜻한 차 한 잔 두손으로 쥐고 가만가만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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