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해바라기 공장 - 이기인

2005.06.23 10:40

윤성택 조회 수:1715 추천:230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 이기인/ 《창비시인선》(근간)


        해바라기 공장
        
        촛농을 삼켜버린 불빛,
        일기의 맨 마지막 이야기는 너무 외롭다는 것이고
        너무 외롭다는 것은 소녀의 얼굴에 박힌 주근깨처럼 너무 많았네
        어디, 깨진 거울을 좀 보자

        어제 본 해바라기도 주근깨가 많은 소녀를 닮았네
        그 해바라기도 일기장만한 큰 잎사귀로 서서 온종일 울었네
        인부들의 겉옷이 해바라기에 걸쳐 있는 동안
        해바라기는 인부의 아이를 닮았네

        밤새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 앞을 지나서
        소녀들 눈 비비고 공장 속으로 들어가버린 후,
        해바라기는 얼굴을 들었네

        공장 근처에서 서성거렸던 인부들아 날 좀 보렴, 보도블록은 다 깔았니,

        가끔은 먼 친척처럼
        잎사귀를 흔들었던 해바라기를 지나서 온 얼굴
        밤늦게 일기 속으로도 들어오고
        오늘 공장 가는 길에 새로 깐 보도블록 때문에
        해바라기......죽었다고 쓰기도 하네

        길바닥에 누운 해바라기의 주근깨를 오래 잊지 못하네
        공장 가는 길목에 이제 누가 손 흔들어주나


[감상]
해바라기에서 여공인 주근깨 소녀로, 주근깨 소녀가 인부의 아이로, 인부들이 깐 보도블록에 죽은 해바라기가 다시 여공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억압을 보여줍니다. 인천 학익동에 방직공장이 있던 시절을 그린 시라고 쓰여 있군요. 비유에 진정성이 서려 있어 느낌이 좋습니다. 종종 발표된 시를 묶어 언제 볼 수 있나 싶었는데 반가운 소식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11 여주인공 - 이희중 2002.02.16 1070 173
1010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2002.02.18 1204 186
1009 폐타이어가 있는 산책길 - 최영숙 2002.02.19 1138 188
1008 귀향 - 박청호 2002.02.20 1187 195
1007 수도관은 한겨울에만 꽃을 피우고 - 심재상 2002.02.21 1133 215
1006 푸른 사막을 보고 오다 - 권현형 2002.02.22 1412 182
1005 겨울 밤에 시쓰기 - 안도현 2002.02.23 1601 181
1004 나무를 생각함 - 최갑수 2002.02.26 1295 177
1003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 - 김영남 2002.03.04 1196 200
1002 그가 두고 온 빈집에선 - 이정록 2002.03.05 1219 178
1001 버리고 돌아오다 - 김소연 2002.03.06 1174 184
1000 PC - 이원 2002.03.07 1220 198
999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 이선영 2002.03.11 1151 215
998 젊은 날의 겨울강 - 최동호 2002.03.12 1152 210
997 가시 - 남진우 [1] 2002.03.14 1327 217
996 바람불던 집 - 장승진 2002.03.15 1183 200
995 안개에 꽂은 플러그 - 이수명 2002.03.16 1118 178
994 신림동 마을버스 - 최승철 2002.03.18 1151 171
993 무덤 - 안명옥 2002.03.19 1145 205
992 1984년 - 김소연 2002.03.20 1243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