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구강본/ 민음사
기린
내가 그리고 있는 기린은
네가 그리고 있는 기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엉터리 기린 그림이라고
너는 말하지만 그래 나는 기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그렸다
너의 기린이 점점 형체를 갖추면서
나무의 잎사귀와 열매를 따먹으며
너의 붓끝에 사로잡히는 동안에도
나의 기린은 점점 자라 화폭을 뚫고
이젤을 넘어뜨리곤 시멘트 바닥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간다
[감상]
198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시집입니다. 기린에 관한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가끔 이런 살아 숨쉬는 표현을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이 시는 다시 읽어도 시선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출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