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푸른 곰팡이 - 이문재

2001.05.21 10:56

윤성택 조회 수:1562 추천:307

산책시편/ 이문재/ 민음사



푸른 곰팡이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감상]
편지가 아름다웠던 시절, 멀리 있었던 사람들에게 편지는 매우 유용하고도 편리한 도구였습니다. 특히 은근하면서도 뜨거운 연민의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에게는 편지만한 매개는 달리 없었고요. 그러나 핸드폰과 이메일의 시대에 편지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편지는 이제 우월한 통신수단의 자리에서 물러나 주변인적인 기능으로 된 것이 아쉽기만 하네요. “나에게서 그대에게로”가 닿는 데에 걸리는 시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에 사나흘씩이나 필요하답니다. 결국 편지가 가는 동안, 마음의 “발효의 시간”이 있는 셈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51 부서진 활주로 - 이하석 2001.05.12 1286 266
1150 기린 - 구광본 2001.05.14 1367 266
1149 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 2001.05.15 1609 298
1148 꿈의 잠언 - 배용제 2001.05.16 1534 278
1147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 함민복 2001.05.17 1380 324
1146 소음동 삽화 - 서광일 2001.05.18 1290 277
» 푸른 곰팡이 - 이문재 [1] 2001.05.21 1562 307
1144 편지에게 쓴다 - 최승철 2001.05.22 1612 261
1143 서른 부근 - 이은림 2001.05.24 1541 269
1142 바기날 플라워 - 진수미 [1] 2001.05.25 1378 302
1141 만월 - 정지완 2001.05.26 1317 262
1140 기억에 대하여 - 이대흠 2001.05.28 1566 269
1139 반성 16 - 김영승 2001.05.29 1314 255
1138 그 날 - 이성복 2001.05.30 1622 257
1137 부드러운 감옥 - 이경임 2001.05.31 1397 268
1136 木도장 - 손택수 2001.06.01 1536 350
1135 폭설 - 박진성 2001.06.04 1472 277
1134 방생 - 이갑수 2001.06.05 1213 264
1133 이름 모를 여자에게 바치는 편지 - 니카노르 파라 [1] 2001.06.07 1460 275
1132 목재소에서 - 박미란 2001.06.08 1234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