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네 어깨 너머, - 김충규

2010.01.18 17:20

윤성택 조회 수:1145 추천:121

  《아무 망설임 없이》/ 김충규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 / 《시인시각시선》002

        네 어깨 너머,

        네 어깨 너머, 낮달이 서걱거렸다
        물결을 끌고 온 새 떼가 네 어깨 너머, 푹 꺼졌다
        멀리 숲에 나무들이 제 비늘을 벗겨내고 생선처럼 누웠다고 네가 속삭였다
        저 숲에 함께 날아가겠니? 라고 다정하게 덧붙였다
        관심이 없었다 네 어깨 너머, 길바닥에 죽어 있는 고양이가 스산했다
        어젯밤에 배가 고파 울던 그 고양이였다 분명 무늬가 같았다
        살아있던 무엇인가가 소멸할 때 그 몸속에 있던 빛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몸이 식을 때 한순간 피시식 꺼져버리는 걸까
        허공의 사방으로 뻗어나가 다른 빛들과 버무려지는 걸까
        죽어볼까? 뜬금없는 내 말에 네 어깨가 막 피어오르던 일몰을 가렸다
        남편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여자를 알아, 네가 말했다
        너니? 라고 묻지 않았다
        네 어깨 너머, 달이 화장을 하고 바람이 숲의 비린내를 몰고 오고
        너는 더는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고 휴대폰엔
        죽은 스승을 만나러 숲으로 갈까? 라는 친구의 문자가 식어 있고
        오늘밤엔 어떤 고양이를 만날까

  
[감상]
‘네 어깨’라는 말, 이 시에 와서 안온하고 부드럽게 읽힙니다. 홀로된 존재가 불길하고 황량할지라도 이렇게 두 사람이 시적 소통 안에 있으면 스르르 서정에 동화됩니다. 죽은 고양이를 통해 영혼의 본질을 ‘빛들’로 이해하려는 것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열망입니다. 죽음까지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섬세한 관점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그 무엇을 순수하게 물들인다고 할까요. 강화도 전등사 산비탈의 한그루 소나무에 깃든 스승…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어슴푸레한 연민이 일몰처럼 번져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51 부서진 활주로 - 이하석 2001.05.12 1286 266
1150 기린 - 구광본 2001.05.14 1367 266
1149 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 2001.05.15 1609 298
1148 꿈의 잠언 - 배용제 2001.05.16 1534 278
1147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 함민복 2001.05.17 1380 324
1146 소음동 삽화 - 서광일 2001.05.18 1290 277
1145 푸른 곰팡이 - 이문재 [1] 2001.05.21 1562 307
1144 편지에게 쓴다 - 최승철 2001.05.22 1612 261
1143 서른 부근 - 이은림 2001.05.24 1541 269
1142 바기날 플라워 - 진수미 [1] 2001.05.25 1378 302
1141 만월 - 정지완 2001.05.26 1317 262
1140 기억에 대하여 - 이대흠 2001.05.28 1566 269
1139 반성 16 - 김영승 2001.05.29 1314 255
1138 그 날 - 이성복 2001.05.30 1622 257
1137 부드러운 감옥 - 이경임 2001.05.31 1397 268
1136 木도장 - 손택수 2001.06.01 1536 350
1135 폭설 - 박진성 2001.06.04 1472 277
1134 방생 - 이갑수 2001.06.05 1213 264
1133 이름 모를 여자에게 바치는 편지 - 니카노르 파라 [1] 2001.06.07 1460 275
1132 목재소에서 - 박미란 2001.06.08 1234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