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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2001.08.04 11:28

윤성택 조회 수:1241 추천:245

백석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감상]
원래 주말은 "좋은시"를 남기지 않지만, 오늘은 왠지 남기고 싶어지네요. 지금부터 70여 년전 한 사내가 사랑을 하였고, 그녀를 위해서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 한 여름, 그 마음이 고스란히 활자에서 풀려 전달됩니다. 마치 詩 속에서는 마법처럼 눈이 내리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풍경들이 선합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정말 놀라운 표현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밤 눈이 내린다니요, 그에게는 우주의 질서조차 그녀와의 사랑 앞에서는 소도구가 되어버립니다. 그가 홀로 만주의 춥고 쓸쓸한 방에 남아 고향과 그녀를 그리워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합니다. 주말입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하여서 오늘밤은 소나기가 푹푹 나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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