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잠 속의 잠 - 정선

2011.02.07 10:32

윤성택 조회 수:1258 추천:119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정선 (2006년 『작가세계』로 등단) / 《시작시인선》124

          잠 속의 잠

        한밤중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몸의 깊숙한 곳이 패였다
        내 잠도 한 방울씩 샜다

        티브이는 행복한 오후를 저 혼자 노래하고
        나는 죄수처럼 질질 끌고 다니던 잠을 게워낸다
        게으른 하품 속으로 햇살들이 시옷자로 부서진다
        어제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시시해져
        길가 은행나무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고개를 내밀고 대화를 엿듣는 하오 네 시
        모두 막혔어
        그늘은 비상구야
        나무의 목소리는 투명하고
        그늘은 기다랗게 또 다른 수로를 내고 있다
        갈라진 수로바닥의 잠 한 마리
        그늘 속에 둥지를 틀고 뒤척인다
        내 몸을 파먹고
        텅 빈 몸 어느 돌 틈에 알을 낳은 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강을 거슬러오른다


[감상]
누구나 그러하듯 어려웠던 시절, 막막하게 하루를 지낼 때가 있었습니다. 정해진 것 없이 무작정 희망을 기다려야 했던 날들, 그때의 불면은 잠 속의 잠이 무기력한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청각적 이미지에서 길어내는 소소한 일상을 내적 성찰로 가닫습니다. 브레이크 밟는 사소한 소음에도 민감하고, 어제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시시해져 돌아눕게 만들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갈망하고 있는 그 무엇, 그것을 듣기 위해 열려 있는 ‘귀’가 스스로를 자꾸만 깨웁니다. 투명한 나무의 목소리, 웅크리고 있던 생의 대반전인 꿈의 산란! 그렇게 막힌 일상에서 나 자신이 비상구를 향해 거슬러 오르길 바라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1 그리운 상처 - 양현근 [1] 2009.04.23 2106 119
90 아무도 오지 않는 오후 - 고영 [2] 2009.05.07 2076 117
89 아코디언 연주자 - 김윤선 2009.05.18 1588 124
88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 허수경 2009.11.04 917 116
87 사랑의 물리학 - 박후기 [1] 2009.11.05 937 105
86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
85 흩어진다 - 조현석 2009.11.10 928 139
84 가랑잎 다방 - 황학주 2009.11.11 1031 133
83 해바라기 - 신현정 2009.11.13 999 118
82 빈 손의 기억 - 강인한 2009.11.14 926 115
81 로맨티스트 - 하재연 2009.11.17 927 108
80 나무 안에 누가 있다 - 양해기 2009.11.18 906 121
79 대설 - 정양 2009.11.19 905 109
78 추상 - 한석호 2009.11.21 855 119
77 야생사과 - 나희덕 2009.11.23 1068 124
76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구재기 2009.11.24 1304 122
75 오늘은 행복하다 - 김후란 2009.11.26 1284 118
74 고백 - 남진우 2009.11.27 1144 131
73 연두의 시제 - 김경주 [1] 2009.12.02 1087 119
72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