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김충규/ 문학동네 (근간)
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
대나무 잎과 잎이 서로의 귀를 갈아준다
어린 새가 그 사이에서 퍼덕거린다
퍼덕거린 만큼의 전율이 대숲에 좌악 펼쳐진다
대숲을 품고 있던 산이
울컥 토해놓은 놀 찌꺼기
찌꺼기가 잎마다 반점처럼 묻어 있다
그 아래에서
나는 귀신처럼 서성거렸다
대숲에 들어가면
내 생을 애태웠던 시간이 흐름을 멈추고
제 몸 속에 깊은 우물을 판다
우물 속으로 들어간 시간을 불러내면 안 된다,
그러면 대나무 잎들이 날카로운 칼로 변해
내 몸을 베려고 덤빌 것이다
무엇을 완성하려고 하면 안 된다,
대숲에선 속에 든 것을 울컥울컥
토해놓아야 한다 토해놓을 것이 없으면
내장이라도 토해놓아야 한다
대나무 속이 왜 비어 있겠는가
나날이 비우고 비우기 위하여
사는 대나무들,
비운 만큼 하늘과 가까워진다
하늘을 보라, 가득 채워져 있었다면
어찌 저토록 당당하게 푸르를 수 있겠는가
다 비운 자들만이 죽어 하늘로 간다
뭐든 채우려고 버둥거리는 자들은
당장 대숲으로 가라
당장, 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
성난 대숲이 싹둑싹둑 잘라놓은 구름이
대숲 너머에 버려져 있다 거기,
제 육신을 다 비워버렸던 자들의 뼈가
시간의 도움 없이도 삭고 있다
[감상]
가늘게 뻗어 오르는 대나무 숲을 보게되면 어쩐지 비만하지 않는 나무의 신선들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느낌이었을까요. 이 시는 그러한 경외감이 묻어나는 시입니다. 대나무를 단지 대나무로 보지 않고 시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또 그 발견으로 인하여 공감이 가슴으로 전해져 올 때 시적인 울림이 파르르 다가옵니다. "대나무 속이 왜 비어 있겠는가/ 나날이 비우고 비우기 위하여/ 사는 대나무들,/ 비운 만큼 하늘과 가까워진다/ 하늘을 보라, 가득 채워져 있었다면/ 어찌 저토록 당당하게 푸르를 수 있겠는가/ 다 비운 자들만이 죽어 하늘로 간다" 이 부분은 대나무에 관한 것이지만 어쩐지 삶의 경전처럼 되읽게 되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