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동서커피문학상 은상 / 김혜경 (겨울숲 동인)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아버지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싶다
푸른 추억의 바퀴를 차르르 돌려서
언제나 나무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아카시아 나무 그늘을 지날 때면
저 꽃처럼 향기 나는 사람 되라시던 아버지
나는 그 하얀 꽃나무에 기댄
한 마리 참알락팔랑나비였다
까르르 까르르 아카시아 꽃들이 바람을 흔들 때면
아버지의 힘들었던 生도 웃음을 머금은 채
자전거 페달을 밟던 아버지의 다리는 동그란 바퀴가 되었다
나는 여태껏 어떤 향기를 풍기며
살아 왔을까
세상의 그늘은 아니었는지
지치고 상처 입은 내 삶이
서러운 날, 나는 보온병에 커피 가득 부어
오랫동안 세워둔 자전거 타고
초록물결 찰박이는 숲으로 간다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오면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아홉 살 계집아이로 돌아간다
[감상]
왜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가고 싶은 것일까요? 아홉 살 계집아이의 시공간, 어쩌면 아버지의 존재가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자전거 뒷좌석에 매달려 향기를 쫓던 시간은 푸른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 어느덧 아이는 자라나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차분한 어투로 풀어내는 시 곳곳에 진솔함이 배여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