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 장인수/ 《문학세계사》 (신간)
엽낭게
갯벌의 수천 억 밑구멍을 들락이며
강에서 떠밀려온 푸른 수초와
하늘에서 떠밀려온 붉은 구름과
섬에서 떠밀려온 유성과 썰물과 짠 모래가 범벅된
광활한 시간의 잔해를 열심히 썰어 먹는다
뻘의 뒷물과 섞어 먹는다
놀랍도록 빠르게 집게를 놀려대느라
집게에 불꽃이 일어날 지경이라서
집게를 뻘의 뒷물에 식히며 먹는다
집게가 식으면서 지지직 거품이 일어난다
[감상]
시인은 일상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계를 완성하고 그 세계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시인에게 있어 <직관>이란 이런 세계 속에 작용하는 물리법칙과 같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갯벌 엽낭게 <집게가 식으면서 지지직 거품이 일어>나는 것도, 시인만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유기물과 플랑크톤이 붙어 있는 모래를 먹고 깨끗하게 세척한 모래로 둥글게 뱉어 놓는 엽랑게가 그러하듯, 시집 곳곳 혼탁한 세상살이를 온몸으로 받아내 정화시키는 해학과 진정성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