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아래서 징소리를> / 김길나 (1995년 시집『새벽날개』로 등단) / 《다층》 2007년 여름호
산수유 아래서 징소리를
그녀의 맨발을 만져보고 싶었으나
그녀는 일찍이 땅 속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묻힌 흙에서 빠끔히 떡잎이 눈 뜨고
떡잎에 숨은 길 한 가닥이 불쑥 일어나
줄기는 허공을 주욱 찢어 올리고
가지들은 또 낭창낭창 허공을 건드리고
허(虛)를 찔린 허공이 여기저기서 째지고
째진 공(空)의 틈새에서 얼굴 하나씩이 피어나고
이렇게 수많은 그녀가 그녀의 맨발에서 솟아났다
파르르 떨리는 허공의 틈새마다에서
울려나오는 저 소리는 번쩍이는 징소리
그리고 연달아 징을 치는 쟁쟁한 해 뭉치
공을 트고 나온 얼굴들을 푸르게 두들겨 펴는.
[감상]
이 시는 시각을 청각화 하는 직관이 탁월합니다. 태양에서부터 꽃에게도 도달하는 햇볕의 파장을 <징을 치는 쟁쟁한 해 뭉치>로 발견한 부분이 단연 돋보입니다. 어떤 구성진 가락이 있었기에 산수유가 잎보다 먼저 저리 노란 꽃이 흐드러졌을까. 햇볕이 카메라에 번졌을 때 나타나는 둥근 모양의 테가 <징>이었겠구나, 대낮의 햇볕으로 저리 징을 두들겨 그 진동으로 꽃이 열리는구나 싶어집니다. 눈으로 본 것이 귀로 들리는, 시인의 감각에 추임새를 넣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