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신춘문예 당선 시집》/ 정재록/ 문학세계사
동백꽃 화인
선창가 뒷골목의 동백여인숙 비닐 장판에
800℃짜리 동백 한 송이 졌던가 보다
보일러의 파이프 자국이 물결치는 노르께한 비닐 바닥에
섬처럼 던져진 까만 점 하나
아까 다방에서 티켓 끊어 차 배달 나가던
핫팬츠의 손목에도 세 개나 찍혀 있던 동백꽃 자국
여인숙의 장판만이 아니라 사람의 살 속으로도
불을 찔러 넣을 수 있다는 증표
불의 도장을 꾹 찔러 넣은 화인火印
불이 심어놓은 뿌리는 깊고 깊다
보온병을 든 손목을 종두자국만하게 파고든 불도
이 막다른 선창까지 뿌리가 한참 깊을 것이다
그 불씨 한 점 가슴에 묻고
이 선창가 후미진 여창에서 너를 생각한다
네 속 깊이 찍혔을 화인을 눈여겨보고 있다
네 몸에 숙명처럼 떠 있을 섬 하나를
이 허름한 여인숙의 비닐장판에서 본다
볼 덴 자국을 증거인멸할 수도 없는 너
그 깊은 뿌리를 더듬어 너에게 가리라.
[감상]
여인숙 장판 눌어붙은 흔적과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있는 손목, 더 나아가 바다의 섬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가는 <화인> 이미지가 인상적이군요. 객지인 어느 바닷가 풍경을 세심한 관찰력으로 바라보고, 그런 이미지를 그러모을 수 있는 직관도 좋습니다. 흉터는 그 사람의 아픈 기억을 몸의 징표로 남겨놓습니다. 그래서 흉터는 <증거인멸>할 수 없는, <네 몸에 숙명처럼 떠 있을 섬>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연이길래 뜨거운 담뱃불을 제 살갗에 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보면, 섬이 바다 아래 내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처럼 고통도 연민도 다 같은 마음만 같습니다. 그래서 봄은 <동백꽃>처럼 한 목숨으로 연대해서 오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