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김형미 (2000년 『진주신문』, 『전북일보』 신춘문예, 200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 《문학의전당》 시인선 90
내 그림자
내 그림자는 검은 물이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아무런 냄새도 없다
아주 오래 산 가물치 같기도 하고,
내 심연 깊은 곳에 내가 그린 난 같기도 하다
아무 말 않고 있어도 나는 내 그림자에게서
검은 물의 소리를 듣는다
크고 작은 별들을
가슴에 보듬어 안고 있는 검은 하늘물
천둥과 번개를 몸속에 지닌 그 물은
세상일을 다 아는 가물치처럼 그윽해 보이기도 하고,
화선지 위를 스치며 지나가는 난처럼
고단하지만 길고 가는 숨을 여백으로 두고 있다
다치지 않고 형형한 느낌을 주는 눈을 가진
내 그림자가 고요하게 나를 바라보면,
내 눈 속에도 하늘물이 고인다
그러면 나는 또 내 쓸쓸하고 고독한 그림자를 본다
땅 위에 드리워진 검은 하늘물 그림자
그리고 귀신인지 사람인지 아무런 냄새도 없이
나도 내 그림자가 되어간다
[감상]
한 사람의 음영인 그림자는 종종 그 사람의 영혼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 모티프에는 대체로 한 개인 속에 내재되는 열망과 상반된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자신의 그림자가 ‘검은 물’이라는 확정에서부터 삶의 깊이에 대한 응시로 동일화해 갑니다. 물의 순환처럼 먹구름이 비가 되고 그 비가 땅에 스미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삶과 죽음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라면, 존재한 내가 ‘귀신인지 사람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부터 영물인 가물치의 등장은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대상이 필요해서 였을 것입니다. ‘나도 내 그림자가 되어간다’라는 마지막은, 生의 집착에서 일순 멀어져가는 나를 깨닫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