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들여다본다》/ 권지숙 (197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 《창비시선》325
밤의 편의점
밤은 지키는 자의 것
한밤중 지친 꿈길 위의 모퉁이
어둠을 제압하는 하얀 불 활짝 켜고
턱 고이고 노려보고 있죠
불쑥, 침입자가 구원처럼 나타나면
드르르륵, 냉장고가 진저리를 치고
하루 25시간 AM에서 PM까지
야맹증의 시간들을
초록 눈의 고양이와 함께 눈에 불을 켜고
속수무책으로 지켜요
말할 수 없는 비애의 순간들
안개가 스멀스멀 스스로를 지우며
도시의 지붕 위를 두리번거릴 즈음
중천에서 떠돌던 자들도 어슬렁어슬렁 주문을 외며
돌아와요 공복의 텅 빈 길 위에도
사막 같은 아침이 오기는 오겠죠
푸른 달빛이 찬 길바닥에 얼룩처럼 스며들 때
살찐 남자 하나 계단에 드러누워
상형문자로 불안한 잠꼬대를 하고
마침내 도시의 아침은 모퉁이에 숨어 기다려요
밤은 찾는 자의 것
당신은 모르죠?
[감상]
도시의 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편의점입니다. 대부분 인간은 생래적으로 밤에 잠을 자야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한 편의인 것입니다. 이 시는 관찰자적 시점에서 도시의 한 편의점을 들여다봅니다. ‘밤은 지키는 자의 것’에서 알 수 있듯, 졸음으로부터 무언가를 잃거나 침해당하지 아니하도록 보호하거나 감시하는 이미지가 전체적인 주조를 이룹니다. ‘어둠을 제압하는 하얀 불’, ‘공복의 텅 빈 길 위’, ‘아침은 모퉁이에 숨어’ 등의 표현에서 이 시의 관조의 깊이를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