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 (1999년 『문예중앙』로 등단) /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370
시,시,비,비
사랑해라고 고백하기에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
다 이보다 더 화끈한 대답이 또 어디 있을까 너무
좋아 뒤로 자빠지라는 얘기였는데 그는 나 보기가 역
겨워 가신다면서 그 흔한 줄행랑에 바쁘셨다 내 탓이
냐 네 탓이냐 서로 손가락질하는 기쁨이었다지만 우
리 사랑에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건 결국 시 때문이다
줘도 못 먹는 건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감상]
상식과 도덕이라는 질서를 가르쳐 주는 건 사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체적인 삶을 경계하는 것도 사회이기도 합니다. 문학에 있어서, 특히 시는 고상하거나 고귀해야 한다는 게 이를테면 사회적 상식이지요. 그러나 시인의 자의식에 꿈틀대고 있는 그 무엇. 이것이 극대화 되었을 때 시는 새로운 인지의 지평을 열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밀고 가는 것에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생기발랄하고 통쾌하고 유쾌한 이 느낌은 기존 여타 시들에서의 식상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고백을 받아들이는 상황도 그렇고, ‘줘도 못 먹는’ 마지막 싯구도 사실은 자의식의 사투에서 이끌어내는 진정성의 한 부분입니다. 시집 곳곳 이러한 파격과 언어의 충격이, 그동안 눈치 보며 살아왔던 날들에게 손 감자를 내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