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박물관』 / 이사라 (198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 《문학동네》 시인선 (2008)
헛새들
시간의 주름들
햇살 깊은 나의 정원에서 나무늘보가 된다
한없이 느리게
시간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들 사이로
불 켜진 모니터
존재는 없고
빈 폴더만 생성하는 무심한 오후
어느 사이 검은 새들이 모니터를 뒤덮는다
자판 위의 잡새들이 날아가
모니터에 제대로 박히지도 못하고
유성(流星)처럼 꾹꾹 운다
내 손가락 끝에서
온갖 헛새가 날아오른다
기러기 까마귀 나무발발이 논병아리 동고비 말똥가리
메추라기 부엉이 뻐꾸기
그림자도 없는 새들
새 곤줄박이 새 기러기 새 닭 새 말똥가리 지빠귀 직박구리
그림자뿐인 새들
검은 세상 속에서
무심한 알을 품고 있다가 무심한 문자를 낳는
내 모니터 속의 세상
한없이 깊다
갈 길은 멀고 모니터 속은 길다
[감상]
컴퓨터의 등장 이래로 모니터 속에는 광활한 '검은 세계'가 존재합니다. 인터넷은 텔레포트와 같습니다. 한쪽을 열면 동시에 아주 먼 공간이라도 다른 쪽 공간이 열립니다. '불 켜진 모니터/ 존재는 없고'란 이처럼 어딘지 모를 다른 포탈로 빨려 들어가는 '길'의 불확정성일 것입니다. 모니터에서 새 폴더를 만들게 되면 새(鳥) 이름의 폴더가 기본으로 생성됩니다. 무려 41개의 새 종류가 있다는군요. 압축프로그램인 ‘알집’ 때문에 이렇게 이름이 생겨진다니 이 시의 은유가 새삼 와닿습니다. 그러고 보면 컴퓨터에 저장된 수많은 폴더는 본래 새의 이름이었던 것이며, 그 안의 문자들은 모두 알처럼 시간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