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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2011.01.12 09:54

윤성택 조회 수:1085 추천:78


《수작》/  김나영 (1998년 『예술세계』로 등단) / 《애지시인선》034

          브래지어를 풀고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율을 70%나 높인다는
        TV를 시청하다가 브래지어 후크를 슬쩍 풀어 헤쳐본다
        사랑할 때와 샤워할 때 외엔 풀지 않았던
        내 피부 같은 브래지어를

        빗장 풀린 가슴으로 오소소- 전해오는
        시원함도 잠깐
        문 열어놔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장 속에 새처럼
        빗장 풀린 가슴이 움츠려든다
        갑작스런 허전함 앞에 예민해지는 유두
        분절된 내 몸의 지경이 당혹스럽다

        허전함을 다시 채우자
        그때서야 가슴이 경계태세를 푼다
        와이어와 후크로 결박해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
        나는 문명이 디자인한 딸이다
        내 가슴둘레엔 그 흔적이 문신처럼 박혀있다
        세상 수많은 딸들의 브래지어 봉제선 뒤편
        늙지 않는 빅브라더가 있다
        

[감상]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난해한 시들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솔직하고 구체적인 소재로한 시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받곤 합니다. 브래지어에 관한 이 시를 읽다보면 섬세한 심리와 자유로운 영혼을 지향하는 순수성이 느껴집니다. 와이어와 후크로 결박한 가슴의 흔적을 통해 <문명이 디자인한 딸>을 발견해내는 관점도 의미심장합니다. <빅브라더>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흔히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습니다. 결국 이 시의 결말은 규격화된 브래지어 둘레에 눌린 문양 역시 하나의 ‘바코드’로, 사이즈별로 정보화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경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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