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馬화』/ 유하 / 문학과 지성사
가장 환한 불꽃
케이에게 얘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내가 이 손을
불꽃 속에 넣고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간 동안만.
-어빙 스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중에서
태양은 늘 자기 마음의 가장 환한 데를
가을 프로방스 땅에 바친다
아를의 어느 허름한 여관방에 누워
바라보는 창밖의 낙조
벽엔 고흐의 방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햇살 한자락의 붓을 들고
이 땅을 노닐다 간 사내
사랑의 끝, 이별,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
그 작은 죽음들과 기꺼이 벗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뜨겁고 환하다
저 잎새에 물드는 낙조처럼
그는 사랑하는 여자의 아비 앞에서
촛불 속에 자신의 손을 밀어넣는다
자기를 태울 때까지만 허용된 사랑,
그리고 사랑의 가장 환한 불꽃인 고통
자기를 다 태울 때까지만
빛으로 허락된 햇살이여,
순한 바람이 불고
석양빛에 타오르는 붉은 잎새가
고흐의 손길처럼 고요히 흔들리고 있다
[감상]
고통과 맞바꿀 수 있는 사랑. 인간의 영혼은 어쩌면 육체라는 화두에 붙잡혀 삶에게 복역중인 것은 아닌지. 이 땅을 노닐다갈 나에게 있어, 무력한 펜은 무엇일까? 고흐의 그림은 그의 눈으로 투영된 세상일 것이므로, 그가 살다간 세상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남는 것이므로, 케이에게 아니 당신에게 사랑이 머물다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