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김승희 / 세계사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서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감상]
이 시에는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죽도록 사랑해서"의 메타포를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이야기들이 생성되고 또 아우라를 형성시킵니다. 세상의 시작부터 죽도록 사랑한 때이기를, 당신을 만나 시작된 사랑이 무구한 세월의 첫단추이길 바라는 마음. 활자로 풀려져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