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를 듣다」/ 장만호/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바람소리를 듣다
아버지는 늙어갈수록 더 깊은 강으로 나갔다 늙은 아버지의 삿대가
비단을 자르듯 저녁의 저 강, 저 저녁의 강으로 나아갈 때 아버지, 자
라 한 마리만 잡아다 주세요 푸른 자라를 키우고 싶어요 그물을 펼치
는 거미를 보면서 나는 자꾸 무언가를 키우고 싶었다 할머니의 밭은
기침소리를 들으며 늙은 아버지는 더 먼 강심으로 배를 저어갔지만
아버지의 그물에 걸릴 고기는 없었다 할머니 기침소리가 너무 커요
아가, 속이 비어있는 것들은 이렇게 소리를 낸단다
바람이 가는 길을 마음이 가네 저녁 한때의 바람을 가르는 대숲에
서 아버지, 늙은 아버지가 살고 아버지 허물을 벗는 봄산의 기슭 아
래서 뼈를 깍듯 갈라진 발굽을 벗겨내는 할머니와 오래 거기 살았네
할머니 자라는 어디를 갔을까요 배 고프지 아가, 소쩍새 소리를 들어
라 그러나 새소리들은 낮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와 마당을 떠다닐 뿐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네 푸른 소리들이 머무는 그곳에서 늙은 아버
지, 거기 우리 갑골문처럼 오래 살았네
[감상]
이 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로 이어지는 회상이 잔잔하게 이어집니다. 이 시가 다른 시인의 시와 다르게 좋은 발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풍경의 소묘에서 그치지 않고 청각을 이용한 이미지의 구체성에 있습니다. 할머니와 아이가 주고받는 대화를 운율감 있게 배치함으로서 '울림'의 감성에 보다 접근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행 '거기 우리 갑골문처럼 오래 살았네'의 기막힌 맺음은 잘 쓴 직유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줍니다. '갑골문처럼'에 이 시의 매력이 단단하게 어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