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진동영/ 《시와상상》2006년 여름호
춤
수챗구멍 거름망 속에 머리카락이 엉켜 있다.
세숫대야를 비울 때마다 발버둥치는 머리카락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금호동 4가 우체국 앞 계단
여자가 길 위에 악다구니를 퍼붓고 있다.
여자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공중에서 휘휘 돌고 있다.
유월 하늘 부스스 풀린 여자의 머리 위로
흰 구름이 떠가고 있다.
수채로 내려간 머리카락이 거름망에 걸려 있다.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는 머리카락
비눗기를 타고 미끈하게 춤을 추고 있다.
[감상]
<수챗구멍>과 <우체국 앞 계단>은 전혀 다른 시적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 두 공간이 너절한 감정표현 대신, 있는 그대로 묘사됨으로서 하나의 주제인 <춤>으로 결합됩니다. 미친 여자가 그러하듯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며, 흰구름 같은 물때를 생각해보면 행동의 포착만으로도 놀라운 암시가 입혀진다고 할까요. 감각적인 경험과 구체적 사물이 어우러져 형성된 <춤>이라는 이미지, 강렬한 인상을 심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