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2007.09.19 18:01

윤성택 조회 수:1608 추천:106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1998년 『세계일보』로 등단) / 《서정시학》 2007년 여름호


        보고 싶은 친구에게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냉동실에 삼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너만 좋다면
        다른 노래를
        내 목청껏 따라 해도 된단다.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너라면 충분히
        너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답장을 써 주기 바란다.

        안녕, 친구.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


[감상]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갈까. 이를 증명하고자 존재론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스터리가 많을수록 인간의 삶은 경이롭다는 점입니다. 이 시를 읽으니 빙의(憑依)를 원하는 화자의 간절함에서 섬뜩한 기운을 느낍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넘나드는 편지는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인간 의식에 대한 연대를 넌지시 일러줍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는 죽은 친구 목소리를 암시하는 대목은 이 시의 숨겨 놓은 반전이겠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문을 닫다 - 문성해 2007.08.28 23685 98
1170 장미 - 박설희 2009.03.09 1737 98
1169 꽃눈이 번져 - 고영민 2009.02.28 1240 99
1168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077 99
1167 루드베키아 - 천외자 [1] file 2007.09.07 1162 100
1166 겨울나무 - 이기선 [1] 2008.09.11 1739 100
1165 풀잎처럼 - 박완호 2009.02.14 1270 101
1164 강 건너 불빛 - 이덕규 2009.03.02 1107 101
1163 누군가 눈을 감았다 뜬다 - 황동규 2007.09.14 1405 102
1162 뢴트겐의 정원 - 권오영 [1] 2008.09.16 1200 103
1161 무가지 - 문정영 2011.01.18 924 103
1160 바닷가 저녁빛 - 박형준 2009.03.03 1317 104
1159 주름 - 배영옥 [1] 2007.08.30 1260 105
1158 사랑의 물리학 - 박후기 [1] 2009.11.05 937 105
1157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042 105
»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1] 2007.09.19 1608 106
1155 사라진 도서관 - 강기원 2010.01.21 1011 106
1154 소주 - 윤진화 2010.01.14 1215 107
1153 빗방울 꽃 - 문신 2009.02.09 1155 108
1152 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 김기택 2009.03.13 1231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