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부레 - 박현솔

2011.01.29 10:41

윤성택 조회 수:816 추천:108


《해바라기 신화》/  박현솔 (1999년 『한라일보』, 2001년 『현대시』로 등단) / 《문학사상》

          부레

        유목의 날들을 건너오듯
        도시의 외곽으로 달려 나오는 트럭
        덜컹거리는 폐부에서 뿌연 연기가 토해진다
        거죽 밖으로 불거져 나온 도시의 길들
        저 길 위에선 누구도 불멸을 꿈꾸지 않고
        썩은 냄새가 또 다른 비릿함을 부르는
        암울한 식도 밖으로 나는 가래처럼 뱉어졌다
        목초들이 태양을 감아 오르다 까맣게 타버린 곳
        바닥을 치고서야 깊이를 가늠하는 부레처럼
        나는 저곳의 음침한 밑바닥을 보고 말았으니
        제 안의 비루한 잠을 모두 드러내 보이며
        삐걱거리는 장롱이며 서랍장, 책장들
        지나온 시간들을 헐거운 잠의 음악으로 연주하는
        저들의 공명음이 먼 유목의 길을 떠나게 한다
        서랍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설익은 연애가
        젖은 바람에 펄럭인다 수신되지 못한 엽서에
        바람의 우표를 붙이고 그리운 옛 문장들을 다시
        생각하느니 사라진 문장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광활한 저 초원의 길에 나의 길도 한 줄 보태어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멀고 먼 유목을 떠난다.
        

[감상]
도시를 향해 가는 사람과 도시를 빠져나오는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도시는 그 자체로 물질과 욕망의 상징이라면, 거처를 정하지 않고 떠도는 유목은 외롭지만 자유로운 메타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도시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입장의 외곽은 ‘썩은 냄새가 또 다른 비릿함을 부르는/ 암울한 식도 밖’일 것입니다. 어느덧 ‘설익은 연애’도 잊고 ‘그리운 옛 문장’도 사라진 생을 뒤돌아볼 때, 유목은 그 꿈을 찾아 옮겨 다니는 먼 길입니다. 월세며 전세며 도시의 ‘음침한 밑바닥’을 겪어본 사람들이 떠난 그 자리에 그렇게 누군가 배달되어 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문을 닫다 - 문성해 2007.08.28 23689 98
1170 장미 - 박설희 2009.03.09 1737 98
1169 꽃눈이 번져 - 고영민 2009.02.28 1240 99
1168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077 99
1167 루드베키아 - 천외자 [1] file 2007.09.07 1162 100
1166 겨울나무 - 이기선 [1] 2008.09.11 1739 100
1165 풀잎처럼 - 박완호 2009.02.14 1270 101
1164 강 건너 불빛 - 이덕규 2009.03.02 1107 101
1163 누군가 눈을 감았다 뜬다 - 황동규 2007.09.14 1406 102
1162 뢴트겐의 정원 - 권오영 [1] 2008.09.16 1200 103
1161 무가지 - 문정영 2011.01.18 924 103
1160 바닷가 저녁빛 - 박형준 2009.03.03 1317 104
1159 주름 - 배영옥 [1] 2007.08.30 1260 105
1158 사랑의 물리학 - 박후기 [1] 2009.11.05 937 105
1157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042 105
1156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1] 2007.09.19 1608 106
1155 사라진 도서관 - 강기원 2010.01.21 1011 106
1154 소주 - 윤진화 2010.01.14 1215 107
1153 빗방울 꽃 - 문신 2009.02.09 1155 108
1152 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 김기택 2009.03.13 1231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