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정기구독 목록 - 최갑수

2001.04.10 10:11

윤성택 조회 수:1880 추천:280

* 단 한 번의 사랑/ 최갑수/ 문학동네




정기구독 목록



나의 정기구독 목록에는
늦은 밤 창가를 스치는 빗소리와
그 빗소리를 들으며 슬쩍슬쩍 읽어보는
윤동주 백석 박용래 같은 눈물을 닮은 이름
몇 자들 새벽녘 앞마당에 고여 있는
막 떠다놓은 찻물처럼 말갛기만 한 하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바람난 애인이
또박또박 적어준 빛이 바랜 하늘색 편지
읍내에서 단 하나뿐인 중앙극장의
야릇하게 생긴 배우들 그 배우들이
슬픈 얼굴로 보여주는 화끈한 '오늘 푸로'
환절기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나흘간의 감기 그때마다 먹는 빨갛고
노란 알약들, 일요일 담에 널어 말리는
초록색 담요와 그 담요를 말고 자는
둥그스름한 낮잠 그 낮잠 위로
헬리콥터가 한 대 가끔 부르르르
저공 비행을 하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내 낮잠도
부르르르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낮잠에서 깨어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들어버린
제라늄 화분 저물 무렵 혼자서 끓여 먹는
삼양라면 다시 필까, 물을 줘보기도 하지만
소식이 없는 제라늄 화분 시들었구나,
식은 밤을 말다 말고 나는

이렇듯 내 가난한 정기구독 목록에는
가난하고도 외로운 이름 몇 개와
붉은 줄이 그어진
희망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연체된 고지서의 커다란 글자들


[감상]
자유로운 것, 가난한 것, 책을 읽는 것, 시를 쓰는 것, 사랑하는 것, 아파하는 것, 또박또박 적어나가는 이 生의 목록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51 로맨티스트 - 하재연 2009.11.17 927 108
1150 부레 - 박현솔 2011.01.29 816 108
1149 대설 - 정양 2009.11.19 905 109
1148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 신해욱 2010.01.12 1282 109
1147 자동카메라 - 김지향 2010.02.03 1437 109
1146 부리와 뿌리 - 김명철 [1] 2011.01.31 1004 109
1145 역류 - 정재학 2008.07.18 1288 110
1144 소각장 근처 - 장성혜 2009.03.18 1047 110
1143 촛불 - 류인서 2009.03.23 1464 110
1142 폭주족의 고백 - 장승진 [1] 2009.02.12 992 111
1141 죽도록 - 이영광 [1] 2011.01.26 1219 111
1140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
1139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1138 연리지 - 박소원 [1] 2011.01.07 939 112
1137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6 112
1136 로컬 버스 - 김소연 2010.01.19 952 113
1135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1134 도망자 - 이현승 2007.10.17 1101 114
1133 기록들 - 윤영림 2009.02.16 1061 114
1132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2011.01.28 1259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