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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 박진성

2001.06.04 11:59

윤성택 조회 수:1472 추천:277

「폭설」/ 박진성/ 『시와정신』2002년 겨울호



        폭설


        연일 폭설이었다
        반지하 방 낮은 창 너머
        고향에서 온 부음(訃音)처럼 눈이 내렸다
        할머니, 할머니, 꽃상여 속에서 덜덜 떨던 복숭아뼈는
        열매를 잉태하시어…
        할머니는 말라 가는 작은 화분이었다
        손으로 툭 치면 방안 가득
        눈발처럼 날리던 향기.
        내한(耐寒)이 약한 식물은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대도
        살아나지 못했다
        빈터에는 아이들 몇 뛰어다니고,
        눈이 내리다 말고 한없이
        공중에서 떨었다
        나무의 뿌리 깊이 창문 열고 눈[雪]을 만지면
        오 년 전 죽은 할머니 복숭아뼈 열매 맺어
        함박눈이 덮쳐왔다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눈뭉치를 던졌다


[감상]
이 시가 좋은 이유는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폭설을 풀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마지막 연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눈뭉치를 던졌다"라는 행위에 있습니다. 정적에 휩싸여 있던 시흐름을 이 하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시 곳곳을 살아 숨쉬게 합니다. 마지막 연의 생동감의 무게가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고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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