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아는 여자 - 최호일

2010.01.22 18:39

윤성택 조회 수:1197 추천:118

  <아는 여자>/ 최호일 (200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안》2009년 겨울호

         아는 여자

        모르는 여자가 아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 몸에는 광화문 연가가 저장되어 있다
        또 다른 모르는 여자는 구멍난 가슴을 부르는데
        너무 솔직한 치마를 입고 있다 저쪽의
        바람이 불어오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지하에서
        노래가 끝날 무렵 누군가 술잔을
        잘못 건드렸는지 세상 밖으로 넘어지고 별이 흔들린다
        밤이 젖었네요 미안해요

        유리잔에 금이 자라기 시작하고
        바닥이 멀리 갈라져 나머지 시간과 부르던 노래와 가사까지
        지진이다 하면서 땅속에 들어가 백 년동안 묻혀 있다면
        저들은 아는 여자가 될까

        그곳에 가을이 오고 아는 여자가 떠난다 해도
        밖에는 비가 내리기도 할 것인데
        
        노래가 땅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어느 날 구조가 되어도 모르는 새처럼
        우리는 지상의 노래를 다시 부르지 못할 것이다
  

[감상]

각박한 도시가 고독한 것은 낯선 타인과의 경계가 있기 때문은 아닌지요. 그런 고립은 아는 사람 조차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곤 합니다. 지상도 아닌 지하 노래방에서 이렇게 모르는 여자가 아는 노래를 부릅니다. 각기 다른 삶에서 1980년대를 공유한 사람이라면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간 연가를 기억하겠지요. 노래방에서 흥을 돋워 주는 도우미의 등장은 세월은 가고 노래만 남은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입니다. 모르는 여자와 모르는 여자가 ‘너무 솔직한 치마’를 입고 팀을 이루고, 자신들만 아는 남자들은 ‘술잔을 잘못 건드’려 기억을 엎습니다. 밝은 햇살 아래 불렀던 청춘의 노래들이 그렇게 쓸쓸히 지하에서 순장되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51 로맨티스트 - 하재연 2009.11.17 927 108
1150 부레 - 박현솔 2011.01.29 816 108
1149 대설 - 정양 2009.11.19 905 109
1148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 신해욱 2010.01.12 1282 109
1147 자동카메라 - 김지향 2010.02.03 1437 109
1146 부리와 뿌리 - 김명철 [1] 2011.01.31 1004 109
1145 역류 - 정재학 2008.07.18 1288 110
1144 소각장 근처 - 장성혜 2009.03.18 1047 110
1143 촛불 - 류인서 2009.03.23 1464 110
1142 폭주족의 고백 - 장승진 [1] 2009.02.12 992 111
1141 죽도록 - 이영광 [1] 2011.01.26 1219 111
1140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
1139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1138 연리지 - 박소원 [1] 2011.01.07 939 112
1137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6 112
1136 로컬 버스 - 김소연 2010.01.19 952 113
1135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1134 도망자 - 이현승 2007.10.17 1101 114
1133 기록들 - 윤영림 2009.02.16 1061 114
1132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2011.01.28 1259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