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꽃 꿈 - 이덕규

2005.07.27 16:30

윤성택 조회 수:1996 추천:222

<꽃 꿈> / 이덕규 / 《현대시학》2005년 7월호



        꽃 꿈

        꿈속에서 활짝 핀 꽃을 보면
        다음날 몸에 상처 입었네
        사는 게 사나워질수록 꿈에
        만개한 꽃밭 자주 보였는데

        몸 곳곳에 핀, 그
        크고 작은 선홍빛 꽃잎들
        꿈땜처럼 마를 때, 나는 정말
        자주 자주 들판으로
        이름모를 들꽃들 보러 나갔네

        오, 누가 어디 먼데서
        쓰라린 마음의 찰과상을 입고
        헤매이다 지쳐 쓰러진
        험한 꿈이
        여기 이렇게 문득
        생시로 피어났을까
        어느 메마른 이가 이토록
        향기로운 꽃꿈을 선뜻 척박한
        내 몸에 대고 꿔주었을까

        지난밤 꽃피던 통증이
        그저 봄바람처럼 맑아져서
        들판에 앉아 하염없이
        흰 붕대를 풀어내는, 나는
        지금껏 누굴 위해
        좋은 꿈 한번 꿔주지 못하고
        어디 먼데
        꿈속의 꽃밭이나
        사납게 찾아 헤매는 사람


[감상]
'꽃 꿈'과 '상처'라는 현실적 고리를 다시 꿈으로 가져가, 나와 타인과의 애틋한 인연을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꽃'을 통해 타인을 발견하고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등가 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저 대상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여느 성찰모드 형식보다 좀더 직관의 밀도가 배여 있다고 할까요. '향기로운 꽃꿈을 선뜻 척박한/ 내 몸에 대고 꿔주었을까'에서 한 번, '나는/ 지금껏 누굴 위해/ 좋은 꿈 한번 꿔주지 못하고/ 어디 먼데/ 꿈속의 꽃밭이나/ 사납게 찾아 헤매는 사람'에서 두 번, 스캐너가 활자를 훑듯 밝은 빛 같은 울림이 마음을 훑고 내려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의 '꽃 꿈'이었습니까.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11 그믐이었다 - 노춘기 2008.01.11 1235 119
1110 늑대의 문장 - 김태형 2008.08.01 1432 119
1109 그리운 상처 - 양현근 [1] 2009.04.23 2106 119
1108 추상 - 한석호 2009.11.21 855 119
1107 연두의 시제 - 김경주 [1] 2009.12.02 1087 119
1106 잠 속의 잠 - 정선 [1] 2011.02.07 1258 119
1105 밤 낚시터 - 조숙향 2007.08.01 1239 120
1104 기습 - 김은숙 2007.09.05 1244 120
1103 꽃과 딸에 관한 위험한 독법 - 김륭 2008.02.21 1276 120
1102 요긴한 가방 - 천수호 2009.04.15 1473 120
1101 청춘 3 - 권혁웅 [1] 2007.10.30 1266 121
1100 길에 지다 - 박지웅 2008.01.10 1408 121
1099 나무 안에 누가 있다 - 양해기 2009.11.18 906 121
1098 네 어깨 너머, - 김충규 2010.01.18 1145 121
1097 스위치 - 김지녀 2010.01.26 1536 121
1096 Across The Universe - 장희정 2007.11.12 1694 122
1095 거기 - 조말선 2007.11.21 1245 122
1094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구재기 2009.11.24 1304 122
1093 가슴 에이는 날이 있다 - 백미아 2008.10.17 2056 123
1092 이 골목의 저 끝 - 정은기 2009.04.09 1782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