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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 채호기

2001.05.04 12:38

윤성택 조회 수:1394 추천:242

슬픈 게이/ 채호기 / 문학과지성사



        두통


        나는 내 머리를 오르는 중이다
        암석투성이의 그 머리를.
        바람은 기억의 머리카락을
        성기게 쓸어넘기고
        발은 길 속으로 잠수했다가
        헐떡헐떡 간신히 떠오른다.

        멀리 관자놀이에 수십 개의
        굴착기가 꽂혀 머리통을 판다.
        바위 구멍에 장착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 하고, 무너진
        머리 한쪽이 휑하다.

        내가 넘어가는 험준한 머리.
        이 산을 비의 밧줄이
        친친 동여매고
        끌어당겼다 늦췄다
        늦췄다 끌어당긴다.

        높이 그 끈을 쥐고 날아가다가
        어디쯤에선가 놓겠지, 슬쩍,
        끈이 끊어지던가......

        머리가 떨어지며 몸을 관통한다.
        망가진 몸통. 속이 엉망이다.

        갈라진 산골짝에 메아리치는
        비명.

        피가 말라버린 억새가
        머리에 가득한데
        나는 성냥을 그어
        억새 허연 평원에 불을 지른다.
        뜨겁다. 머리가. 훨훨 탄다.




[감상]
채호기 시인은 1988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시단에 등장했으며, 시집으로 『지독한 사랑』등이 있는 분입니다. 두통을 산이라는 사물에 접목시킨 점이 새롭습니다. 읽는 동안 내내 기발하다란 생각이 떠나질 않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 불을 지르는 행위가 인상적입니다. 저 역시 아까부터 머리 속에 불이 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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