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가장 환한 불꽃 - 유하

2001.09.17 14:38

윤성택 조회 수:1723 추천:242

『천일馬화』/ 유하 / 문학과 지성사



           가장 환한 불꽃
   
                   케이에게 얘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내가 이 손을
                   불꽃 속에 넣고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간 동안만.
                   -어빙 스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중에서
    
    
             태양은 늘 자기 마음의 가장 환한 데를
             가을 프로방스 땅에 바친다
    
             아를의 어느 허름한 여관방에 누워
             바라보는 창밖의 낙조
             벽엔 고흐의 방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햇살 한자락의 붓을 들고
             이 땅을 노닐다 간 사내
             사랑의 끝, 이별,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
                 그 작은 죽음들과 기꺼이 벗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뜨겁고 환하다
             저 잎새에 물드는 낙조처럼
    
             그는 사랑하는 여자의 아비 앞에서
             촛불 속에 자신의 손을 밀어넣는다
             자기를 태울 때까지만 허용된 사랑,
             그리고 사랑의 가장 환한 불꽃인 고통
    
             자기를 다 태울 때까지만
             빛으로 허락된 햇살이여,
             순한 바람이 불고
             석양빛에 타오르는 붉은 잎새가
             고흐의 손길처럼 고요히 흔들리고 있다
    
    
[감상]
고통과 맞바꿀 수 있는 사랑. 인간의 영혼은 어쩌면 육체라는 화두에 붙잡혀 삶에게 복역중인 것은 아닌지. 이 땅을 노닐다갈 나에게 있어, 무력한 펜은 무엇일까? 고흐의 그림은 그의 눈으로 투영된 세상일 것이므로, 그가 살다간 세상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남는 것이므로, 케이에게 아니 당신에게 사랑이 머물다갈 것이므로.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51 정지한 낮 - 박상수 2006.04.05 1763 238
150 편의점·2 - 조동범 [2] 2004.03.18 1390 239
149 밤바다 - 권주열 [1] 2005.06.22 1532 239
148 엽낭게 - 장인수 2006.09.13 1272 239
147 행성관측 - 천서봉 2006.09.22 1521 239
146 소주 - 최영철 2001.08.06 1556 240
145 음암에서 서쪽 - 박주택 2002.09.24 1086 240
144 푸른 국도 - 김왕노 2005.08.04 1421 240
143 12월 - 강성은 [3] 2005.10.26 2075 240
142 내 마음의 풍차 - 진수미 2001.08.16 1717 241
141 달1 - 박경희 2002.08.08 1503 241
140 나비의 터널 - 이상인 [1] 2006.07.27 2064 241
139 두통 - 채호기 2001.05.04 1394 242
138 나무는 뿌리로 다시 산다 - 이솔 2001.08.02 1359 242
» 가장 환한 불꽃 - 유하 2001.09.17 1723 242
136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 권현형 2006.05.22 1581 242
135 나무 제사 - 오자성 [1] 2006.06.20 1412 242
134 흐린 하늘 - 나금숙 [2] 2005.10.27 2208 243
133 밤의 산책 - 최승호 2006.02.28 2229 243
132 목도리 - 박성우 [1] 2006.03.23 1894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