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유년 - 정병근

2002.09.16 17:51

윤성택 조회 수:1060 추천:189

오래 전에 죽은 적이 있다 / 정병근/  『시작』시인선 6



        유년


        측백나무 냄새를 맡았다
        개미들이 하루종일 햇살을 끌고 갔다
        매미 소리가 한낮의 귀청을 찢었다
        바지랑대 높이 빨래가 펄럭였다
        후두둑, 소나기가 오기 전에
        서둘러 교미를 끝낸 암사마귀가
        숫사마귀를 뜯어먹었다
        단 한번의 정사를 위해
        별들이 공중으로 전 생애를 던졌다
        버둥거리며 뒤집힌 몸을 일으켜 세우고
        쇠똥구리는 둥근 대지의 페달을
        부지런히 밟았다 거미는 발을 헛디딘
        잠자리의 체액을 거침없이 빨았다
        나무와 풀은 함부로 웃자랐다
        바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강과 저수지는 자주 사람을 잡아먹었다
        수억만 리 물길을 뚫고 연어 떼가 돌아왔다
        멀리서 산은 팔짱을 낀 채
        양떼구름을 지키고 있었다
        하늘은 별 생각 없이
        핏빛 노을을 풀어놓았다



[감상]
얼마나 무심해져야 이처럼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풍경을 적어낼 수 있을까요. 유년시절, 어쩌면 소리가 빠진 전쟁영화처럼 이렇게 지나왔는지도 모릅니다. 15년만의 첫 시집이라지요. 시집 곳곳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풍경들이 시선을 이끕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51 정지한 낮 - 박상수 2006.04.05 1763 238
150 편의점·2 - 조동범 [2] 2004.03.18 1390 239
149 밤바다 - 권주열 [1] 2005.06.22 1532 239
148 엽낭게 - 장인수 2006.09.13 1272 239
147 행성관측 - 천서봉 2006.09.22 1521 239
146 소주 - 최영철 2001.08.06 1556 240
145 음암에서 서쪽 - 박주택 2002.09.24 1086 240
144 푸른 국도 - 김왕노 2005.08.04 1421 240
143 12월 - 강성은 [3] 2005.10.26 2075 240
142 내 마음의 풍차 - 진수미 2001.08.16 1717 241
141 달1 - 박경희 2002.08.08 1503 241
140 나비의 터널 - 이상인 [1] 2006.07.27 2064 241
139 두통 - 채호기 2001.05.04 1394 242
138 나무는 뿌리로 다시 산다 - 이솔 2001.08.02 1359 242
137 가장 환한 불꽃 - 유하 2001.09.17 1723 242
136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 권현형 2006.05.22 1581 242
135 나무 제사 - 오자성 [1] 2006.06.20 1412 242
134 흐린 하늘 - 나금숙 [2] 2005.10.27 2208 243
133 밤의 산책 - 최승호 2006.02.28 2229 243
132 목도리 - 박성우 [1] 2006.03.23 1894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