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Y를 위하여 - 최승자

2001.08.10 12:21

윤성택 조회 수:1701 추천:265

최승자 /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Y를 위하여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 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감상]
최승자 시인의 시세계는 참 독특합니다. 세계에 대한 부정은 결국 세계에 대한 껴안기로 되울림 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욕설로 가득한 시 같이 보이지만, 그 역설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정말 무섭도록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욕"이란 배설의 개념이고, 그 배설은 쾌감이라는 욕망의 근저에 잇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 개새끼/ 못잊어!" 이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듭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1 무인 통신 - 김행숙 2001.08.08 1425 262
90 방생 - 이갑수 2001.06.05 1213 264
89 퍼즐 - 홍연옥 [1] 2004.03.02 1733 264
88 날아라 풍선 - 마경덕 2005.07.30 2169 264
87 몽대항 폐선 - 김영남 2006.06.08 1380 264
86 풀잎 다방 미스 조 - 정일근 2001.06.27 1416 265
» Y를 위하여 - 최승자 2001.08.10 1701 265
84 저수지 - 김충규 [1] 2001.05.10 1371 266
83 부서진 활주로 - 이하석 2001.05.12 1287 266
82 기린 - 구광본 2001.05.14 1373 266
81 싹 - 김지혜 2005.12.27 2666 266
80 발령났다 - 김연성 2006.06.27 1662 266
79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2001.06.12 1619 267
78 안녕, UFO - 박선경 2006.05.25 1859 267
77 부드러운 감옥 - 이경임 2001.05.31 1397 268
76 내 품에, 그대 눈물을 - 이정록 2001.06.22 1488 268
75 푸른 밤 - 나희덕 [1] 2001.07.27 1900 268
74 서른 부근 - 이은림 2001.05.24 1542 269
73 기억에 대하여 - 이대흠 2001.05.28 1566 269
72 내 안의 골목길 - 위승희 [2] 2001.07.03 1517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