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뱀파이어와 봄을 - 김효선

2008.03.18 17:52

윤성택 조회 수:1454 추천:136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 / 김효선 (2004년 『리토피아』로 등단) / 《황금알》 시인선 (2008)

  뱀파이어와 봄을

  흐르는, 흐르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족보처럼 긴 시간을  수화기 너머로 보낸다 여자는.  어쩔
수 없이 걸어온 발자국을 지우고 지우며  지우다 다시 되돌
린다 여자는.  스파르타식으로 건너오고 건너가는 계절, 되
돌리고  되돌려도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꽃잎들.  가려고
하면 붙잡아 기어이 붉은 흔적을 남긴다. 지구 밖에는 아직
붉은 피가 돌고 있다. 벚꽃이 피었다 지는 동안에도 여자는
수화기를 든다.
  수화기 너머 사내가  달빛을 뜯으며 졸고 있다. 여자의 피
는 언제부턴가 달빛처럼 파랗다. 사내가 졸고 있는 동안 여
자는 개기일식을 지나는 날이 많아진다.  달빛은 새파란 피
를 뿜어내고  있다.  여자는 다시 수화기를 든다.  지구 밖으
로 새파란 피가 돌고 있다.


[감상]
시간은 삐걱거리며 흘러가지만 계절은 다시 돌아옵니다. 봄과 가을, 산의 색이 변하듯 유장한 지구의 흐름은 순환이라는 에너지로 충만하지요. 이 시를 읽다보면 이러한 흐름에 대한 정서적 직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전화 거는 행위는 타자와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은 그야말로 낮과 밤, 꽃의 피고 짐, 달의 차고 기움, 계절의 흐름일 것입니다. 또한 <뱀파이어>란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서 그 생명력을 빼앗는 자입니다. 피는 생명의 원천이어서 피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생명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지요. 달과 지구의 관계는 이처럼 극적인 방법으로도 소통되는 공전과 자전이라는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파랗다와 붉다의 이미지가 스릴러처럼 형상화된 <봄>이 새롭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71 모과 1 - 유종인 2007.07.25 1267 128
1070 성에 - 김성수 [1] 2007.12.04 1481 128
1069 무애에 관한 명상 - 우대식 2008.01.31 1238 128
1068 신문지 한 장 위에서 - 송재학 [2] 2008.07.01 1616 128
1067 별이 빛나는 밤에 - 장만호 2008.11.26 1829 128
1066 구름 편력 - 천서봉 [1] 2011.02.01 1137 128
1065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9 128
1064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1 - 이성복 2007.08.08 1212 129
1063 지네 -조정 [3] 2007.08.10 1260 129
1062 자폐, 고요하고 고요한 - 최을원 2009.12.15 949 129
1061 어떤 전과자 - 최금진 2007.10.23 1200 130
1060 안녕, 치킨 - 이명윤 [2] 2008.02.04 1643 130
1059 저니 맨 - 김학중 2010.02.04 1480 130
1058 버려진 - 최치언 2011.03.11 1355 130
1057 인용 - 심재휘 2008.11.10 1530 131
1056 고백 - 남진우 2009.11.27 1144 131
1055 붉은 염전 - 김평엽 2009.12.10 954 131
1054 모자 - 김명인 2011.03.08 1494 131
1053 수화 - 이동호 [2] 2007.07.19 1266 132
1052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 박제영 [1] 2008.03.12 1618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