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오늘의 좋은시》 / 황학주 (1987년 시집《사람》으로 작품활동 시작) / 푸른사상
가랑잎 다방
그녀가 허리를 굽히자
스쿠터가 시장 쪽 길을 낸다
장날 사람들은 벌써 흩어지고
구름이 길을 쓸고 있다
늦은 시간 문 따주는 손바닥만한 가랑잎
커피포트 하나 기술 좋게 함께 타고 있다
시골 장터 돌며 커피 파는 가랑잎 스쿠터
올해 쉰이라는 물기 가신 여자가
곰취며 산마늘 파는 조글조글한 할머님들과
자매처럼 깔깔댄다
바스락거린다
가랑잎 다방에 불 켜진다
[감상]
11월은 낙엽과 함께 시작하여 낙엽과 함께 지는 것 같습니다. 거리의 플라타너스 잎잎들도 바람이 불 때마다 툭툭 내려앉습니다. 낙엽은 이 가을에 어떠한 차별도 없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과 사람의 섞임 또한 이 시에서는 이 낙엽들과 궤를 같이 합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낙엽도 어느 턱에서 무리를 이루듯, 시골 장터는 이를테면 세월이라는 바람골에 있는 둔턱 같은 곳입니다. 그곳으로 사뿐히 갈 수 있는 존재는 ‘올해 쉰이라는 물기 가신 여자’이겠지요. 세속에 젖지 않은 가벼운 ‘가랑잎 스쿠터’로 말입니다. 끝 부분 ‘바스락거린다’가 참 살갑습니다. 신문지 한 두 장이면 만들어지는 장터 좌판에서 오가는 이웃의 이야기들, 어쩌면 그 소소한 이야기들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스락거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