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2001.08.13 11:41

윤성택 조회 수:1762 추천:235

안도현


        빗소리 듣는 동안
        
        1970년대 편물점 단칸 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가랑 연애 얘기 하는 것처럼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척 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있게 양푼밥을 누나들은 같이 비볐네
        그 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 잡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같은 내 장단지에도 그날, 살이 올랐다네.

[감상]
안도현 시인의 시가 좋은 이유는 대중성과 문학성의 접점을 찾아낸 탁월한 눈에 있습니다. 아이가 성숙하듯이 시도 똑같이 진화의 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는 기형적으로 진화가 되어 난해하고 모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도현의 시는 평론가들의 구차한 눈치를 보지 않고 대중들에게 기꺼이 시의 살점을 나눠줍니다. 이 시는 오늘 같이 비 오는 날, 알싸한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빗소리를 달리 듣습니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이처럼 상식을 배반한 상상력이 드러났을 때 울림이 전해져 옵니다. 지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31 바람막이 - 신정민 [2] 2007.06.13 1303 141
1030 검은 젖 - 이영광 2008.02.12 1221 141
1029 무의지의 수련, 부풀었다 - 김이듬 2007.01.19 1146 143
1028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 [2] 2008.06.17 1897 143
1027 검은 편지지 - 김경인 2007.07.24 1159 144
1026 녹색에 대한 집착 - 정겸 2007.06.08 1354 145
1025 공중의 시간 - 유희경 2008.12.16 1526 145
1024 얼굴 없는 기억 - 김일영 2003.04.10 1095 146
1023 물의 베개 - 박성우 [1] 2007.04.25 1307 146
1022 밤의 능선은 리드미컬하다 - 문세정 2008.01.29 1328 146
1021 합체 - 안현미 2010.01.06 1029 146
1020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 2011.03.15 1813 146
1019 그 집 - 김우섭 2007.06.26 1504 147
1018 타전 - 정영선 2007.07.02 1237 147
1017 혀 - 장옥관 2010.02.12 1757 147
1016 두 번 쓸쓸한 전화 - 한명희 [1] 2003.08.18 1228 148
1015 허공의 안쪽 - 정철훈 [2] 2007.05.30 1508 148
1014 저녁 빛에 마음 베인다 - 이기철 [1] 2007.07.06 1545 148
1013 목단꽃 이불 - 손순미 2003.04.15 1004 149
1012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 이진명 2003.05.27 1018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