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그러한 광장 - 정익진

2006.03.13 16:10

윤성택 조회 수:1523 추천:234

<그러한 광장> / 정익진/  《현대시학》 2006년 3월호


        그러한 광장

        그 위에 말, 말들이 많은
        서양 장기판 같은
        그러한 광장이다.
        시계탑은 명상적이고
        사람들은 풍선이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
        열광하고 있다.
        한 학생은 입술을 잃고
        주머니 속을 뒤진다.
        양수가 터지는 임산부들.
        이불과 베개 대신
        피라미드가 떠 있는 허공,
        그러한 광장이다.
        기린 한 마리가
        제 그림자를 뜯어먹고
        남자 셋이 아침에 관한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
        그러한 광장이다.
        코피를 흘리는 그림자 넷은
        구름을 뛰어넘은 아이의
        얼굴에 피칠갑을 한다.
        혼자 걸어가는 남자
        혼자 걸어오는 여자와
        마주친다.
        피할 수가 없어
        그냥 서로 뚫고 지나친다.
        그러한 광장이다.
        가족 단위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무질서 해 보이지만
        매우 규칙적인 보폭과 발걸음
        나무와 구름과 아이스크림
        의 삼각구도
        그러한 광장이다.


[감상]
광장의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내는 이미지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휴일을 유추하는 끊임없는 비유의 변조는 간결하면서도 명징하게 광장을 요약해냅니다. 시라는 것도 어쩌면 욕망처럼 그 자체로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무의식일지도 모릅니다. 광장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의미들은 존재의 경계 안팎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반복되는 <그러한 광장이다>에서 보여주는 공간과 시간, 주체의 통칭 앞에서 우리는 <피할 수가 없어/ 그냥 서로 뚫고 지나>칠 뿐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31 바람막이 - 신정민 [2] 2007.06.13 1303 141
1030 검은 젖 - 이영광 2008.02.12 1221 141
1029 무의지의 수련, 부풀었다 - 김이듬 2007.01.19 1146 143
1028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 [2] 2008.06.17 1897 143
1027 검은 편지지 - 김경인 2007.07.24 1159 144
1026 녹색에 대한 집착 - 정겸 2007.06.08 1354 145
1025 공중의 시간 - 유희경 2008.12.16 1526 145
1024 얼굴 없는 기억 - 김일영 2003.04.10 1095 146
1023 물의 베개 - 박성우 [1] 2007.04.25 1307 146
1022 밤의 능선은 리드미컬하다 - 문세정 2008.01.29 1328 146
1021 합체 - 안현미 2010.01.06 1029 146
1020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 2011.03.15 1813 146
1019 그 집 - 김우섭 2007.06.26 1504 147
1018 타전 - 정영선 2007.07.02 1237 147
1017 혀 - 장옥관 2010.02.12 1757 147
1016 두 번 쓸쓸한 전화 - 한명희 [1] 2003.08.18 1229 148
1015 허공의 안쪽 - 정철훈 [2] 2007.05.30 1508 148
1014 저녁 빛에 마음 베인다 - 이기철 [1] 2007.07.06 1545 148
1013 목단꽃 이불 - 손순미 2003.04.15 1004 149
1012 꿈속에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 이진명 2003.05.27 1018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