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와이셔츠 - 손순미

2011.01.10 09:59

윤성택 조회 수:752 추천:69


《칸나의 저녁》/  손순미 (1997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및 『현대시학』으로 등단) / 《서정시학》시인선 045

          와이셔츠

        그는 후줄근하게 걸려 있다
        그는 너무 오래 쉬고 있다

        비썩 마른 사내의 몸을 최대한 커버해준 것은 그였다
        그러나 사내의 현실을 커버해줄 수는 없었다
        
        사내는 죽음 같은 잠을 베고 잔다
        그는 누워 있는 사내를 입어본다
        사내의 몸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몸에 쌓아두었던 시간이 다 떨어져나간 것이다
        
        사내의 몸이 허둥거린다
        죽음보다 캄캄한 절망을
        배불리 먹고
        사내가 잠꼬대를 한다
        
        잘 가라, 와이셔츠
        
        
[감상]
때론 그 사람의 인상이나 호감, 신뢰가 옷차림에서 비롯되고는 합니다. 그만큼 옷은 당사자의 태도, 가치관을 돋보이게도, 혹은 폄하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와이셔츠가 ‘누워 있는 사내를 입어본다’라는 기막힌 발상까지 확장시킵니다. 각박한 도시문명에서 한 인간의 개성이 ‘와이셔츠’로 대체되고 있다는 우울한 단상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실직을 했을지도 모를 사내가 내뱉는 ‘잘 가라’라는 말, 죽음과 절망의 그 암울한 단말마(斷末摩)가 아니겠습니까.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木도장 - 손택수 2001.06.01 1536 350
1190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2001.07.12 1620 337
1189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8 334
1188 트렁크 - 김언희 2001.04.11 1758 332
1187 넝쿨장미 - 신수현 [1] 2001.04.07 2046 332
1186 ㅎ 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2001.04.24 1668 331
1185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2001.06.11 1781 327
1184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 허수경 2001.04.16 2126 327
1183 날아가세요 - 허연 2001.04.12 2172 327
1182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649 325
1181 전망 좋은 방 - 장경복 2001.04.23 1889 325
1180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 함민복 2001.05.17 1380 324
1179 간이역 - 김선우 [2] 2001.04.17 2218 324
1178 우울한 샹송 - 이수익 2001.04.13 1876 324
1177 빛을 파는 가게 - 김종보 2001.07.16 1694 322
1176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1] 2001.04.28 1759 321
1175 펜 노동자의 일기 - 이윤택 2001.04.26 1661 321
1174 그대들의 나날들 - 마종하 2001.06.29 1522 319
1173 장화홍련 - 최두석 2001.04.30 1504 319
1172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5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