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빙점 - 하린

2011.01.15 11:00

윤성택 조회 수:941 추천:81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하린 (1998년 『광주매일』신춘문예, 2008년『시인세계』로 등단) / 《문학세계사》 시인선 22

          빙점

        겨울의 심장은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지루한 하늘엔 제트기가 날고
        멍든 정신은 녹조현상으로 숨이 막히다
        저수지의 심장에 구멍을 뚫고
        야광찌가 되어 깜박인다
        당신과 나의 서로 다른 빙점을 실감한다
        파닥거리는 당신의 사상이
        나의 빙점 아래에서 춤출 때
        차가운 악담이 당신의 노래를 감싼다
        누군가 당신의 정체를 묻는다
        오지를 떠돌다 생을 마감한
        지구의 마지막 종(種)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방식대로 메시지를 보내지만
        나는 나의 방식대로 수신을 차단한다 그러나
        당신을 향한 집착은 우주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결국엔 그리움의 가장자리부터 봄은 온다
        세상의 모든 귀들이 녹아내리고
        불감증 걸린 발바닥이 당신의 소멸을 더듬는다
        쩌억쩍
        쩌어쩍
        환청처럼 전설의 물고기가
        요염한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오는 소릴 듣는다
        길고 긴 빙하기를 통과한다

[감상]
묘하게도 ‘빙점’은 물이 얼기 시작할 때 온도이기도 하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의 온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는 것과 녹는 것, 각기 다른 시각에서 하나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지점에서 이 시는 ‘당신’과 ‘나’의 차이와 간극을 들여다봅니다. 얼음낚시와 연관된 이미지가 서정적으로 어우러지다가, 빙하기로 이어지는 서사 전개까지 예측할 수 없는 내적 이미지의 형상화가 뚜렷합니다. 복작복작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오지를 떠돌다 생을 마감한/ 지구의 마지막 종(種)’의 결연함을 생각하다보면, 역시 실감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木도장 - 손택수 2001.06.01 1536 350
1190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2001.07.12 1620 337
1189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8 334
1188 트렁크 - 김언희 2001.04.11 1758 332
1187 넝쿨장미 - 신수현 [1] 2001.04.07 2046 332
1186 ㅎ 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2001.04.24 1668 331
1185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2001.06.11 1781 327
1184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 허수경 2001.04.16 2126 327
1183 날아가세요 - 허연 2001.04.12 2172 327
1182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649 325
1181 전망 좋은 방 - 장경복 2001.04.23 1889 325
1180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 함민복 2001.05.17 1380 324
1179 간이역 - 김선우 [2] 2001.04.17 2218 324
1178 우울한 샹송 - 이수익 2001.04.13 1876 324
1177 빛을 파는 가게 - 김종보 2001.07.16 1694 322
1176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1] 2001.04.28 1759 321
1175 펜 노동자의 일기 - 이윤택 2001.04.26 1661 321
1174 그대들의 나날들 - 마종하 2001.06.29 1522 319
1173 장화홍련 - 최두석 2001.04.30 1504 319
1172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5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