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 / 박지웅/ 《다층》2006년 봄호
종이호랑이
오래 누워 자꾸 얇아지더니 아비는 종이호랑이가 되었다. 찢
으면 찢기고 접으면 접히는 종잇조각이 되었다. 콧속으로 호스
를 밀어 넣을 때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던 당신, 홍대 지하철 통
로에 걸린 호랑이 민화처럼 하루 종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긁
어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당신의 입이 걸려 있는, 지하철역
통로에서 나는 종이가 된 당신의 입을 만져보았다. 오늘은 또
발이 죽었다 한다. 당신이 당신을 하나씩 보내는 동안, 나는
지하 골방에서 접었다 폈다 당신을 추억하였다, 나는 멀리 서
울에 있었다.
[감상]
홍대 전철역에 그려진 타일벽화는 <까치호랑이(작호도)>라는 민화입니다. 호랑이의 눈이 팽팽 돌아 바보스러울 정도로 해학과 익살이 넘칩니다. 이 시는 그런 호랑이와 아버지를 연결시킴으로서 우스꽝스러움이 깊은 슬픔으로 전이되는 역설을 경험케 합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가부장적 위엄은 사라지고 무능한 <종잇조각>이 되어버린 아버지, 화자는 그런 아버지를 고통스러워하며 지하철역 통로에서 민화를 만져봅니다. 멀리 서울에서 추억을 접었다 폈다 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