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직 거기 있어?/ 김충규/ 『문학사상』6월호 (2002년)
너 아직 거기 있어?
꽃상여는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개를 통과해야만 저승에 이를 수 있다는
듯이. 소리없이. 꽃상여의 마른 꽃이 점점 축축해졌다. 관 속의 시체도 축축해지고
있을까. 아무도 고인을 위해 통곡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안개 속에서 함부로 킬킬
거릴 수 있었다. 이승과 저승이란 것, 길다란 원통을 사이에 두고 양 쪽에서 구멍
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너 아직 거기 있어? 이곳이 참 따뜻해. 이리로 오겠니?
서로 반대편 구멍에서 빛나는 눈동자를 향하여 외치는 소리들. 바람이 불지 않았
으나 안개는 자꾸 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꽃상여를 뒤따르지 않고 일부러 낙오
했다. 숨어 있던 강이 천천히 공포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강 건너에 걸린 등불이
심장처럼 헐떡거렸다. 너 아직 거기 있어? 저승에 막 도착한 사람처럼 나는 강 너
머로 도시를 향하여 소리쳤다.
[김충규 시인 시작메모]
이승의 '나'와 저승의 '나'가 안개 속에서 서로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서로 자기에게 오라고!
[감상]
'죽으면 강을 건넌단다'라고 우리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북 치고 꽹과리 쳐대는 패거리를 따라 강을 건너고 싶었는데 외할머니의 아버지가 뒤에서 어딜 가냐고, 뒤에서 그렇게 붙잡았더랍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욕을 하면서 깨어났습니다. 그런 다음 막 태어난 막내 외삼촌을 안아보았더랍니다. 이 시는 제가 들었던 이 이야기처럼 그런 보편적인 생각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우회적인 표현들이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 아직 거기 있어?"라는 저승의 소리를 아직 듣지 못하고 生을 조화처럼 말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