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빵이 먹고 싶다』/ 이영식/ 문학아카데미 시인선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소슬바람 속 후박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먹고무신 그림자 끌며 창가를 기웃거린다
어쩌면 내 전생이었을지도 모를,
저 나그네에게 술 한잔 권하고 싶다
해질녘 빈손으로 겨울마차 기다리는 마음도
따스한 술국에 몸을 데우고 싶을 게야
그늘 아래 쉬어간 사람의 안부도 궁금할 것이다
천장 한구석 빗물 자국처럼 남아 있는
기억 속으로 나무 그림자가 걸어 들어온다
아이 얼굴보다 큰 잎으로 초록 세례 베풀고
허방 짚던 내 손을 맨먼저 잡아주었던
후박나무, 그 넉넉한 이름만으로도
내 삶의 든든한 배후가 되어 주었지
나는 저 후박한 나무의 속을 파먹으며 크고
늙은 어메는 서걱서걱 바람든 뼈를 끌고 있다
채마밭 흙먼지에 마른 풀잎 쓸리는 저녁
후박나무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다가
빈 가지에 슬며시 별 하나를 내건다
세상의 창,
모든 불빛이 잔잔해진다
[감상]
읽으면 읽을수록 따뜻해지는 시가 있지요. 어느 먼 길을 돌아 나와 거기 섰을까, 후박나무를 나그네로 바라보는 시선이 정겹습니다. 인정이 많고 거짓이 없는 것을 후박하다고 합니다. 후박, 후박. 내가 당신을 알아보기까지 거기에 후박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