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2005.01.27 16:28

윤성택 조회 수:1331 추천:220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문학동네》1999년 여름호, 제5회 신인상 당선작

         포레스트검프

          사랑이라 믿었던 순정한 것들이
          명치끝을 통과해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명치 속 검붉은 멍을 쪼며
          자라던 가엾은 유리새들
          길바닥에 깨어지고
          나, 검은 짐승처럼
         이 생을 뛰어넘고 싶었다.
  
          넘어져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던
          어린 날처럼
          울음 뒤에 오는 평화를 홀로 일으켜 세우며
          나는 달린다.
          달리면 달릴수록 내 몸 안에 버려둔 발짝들이
          흘러넘쳐 나를 데리고 강으로 가고
          강가에는
          ‘프랑스제과’ ‘가람서적’ ‘정든다실’ 같은 산 그림자 흘러내려.
  
          나는 빠르게 은어떼 사이로 미끄러진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열병보다 빨리 달려 병을 떨어뜨린다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말씀 같은 것.
          어둠은 고양이의 발톱처럼
          캬릉!
          뒷목을 할퀴려고 하지만
          하!하!
          나는 강낭콩보다 푸르게 튀어오른다.
  
          달리면서 바라보는 것들 속엔 심장이 뛴다.
          새벽을 달리는 불자동차는 불타는 심장이
          흰 우유를 가득 싣고 달리는 자전거에는 밀초 같은 심장이
          감청빛 교복을 입은 여학생에게는 레몬 같은 심장이
          탁탁, 어둠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두드려라
          모든 것들이여
          전봇대를 두드려 전나무를 만들고
          가로등을 두드려 꽃을 만들고
          폐가를 두드려 카페를 만들고
          불행을 두드려 사랑을 만들어라.
  
          그리하여
          더이상 두드릴 것이 없을 때
          나를 두드려
          더 먼 곳으로 가게 해다오.
  
          다시 나를 일으키는 불행이 있는 곳
          그래서 더 멋진
          천치 같은 행복이 있는 곳.
  
          그제서야
          천 개의 다리를 벗어버리고
          깃털처럼 고요히 차오를 듯 차오를 듯
          가라앉게 해다오.

[감상]
이 시를 읽으니 왠지 달리고 싶어지는군요. 그런데 정말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걸까…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51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 2005.10.06 1458 221
950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949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777 221
948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47 221
947 블랙박스 - 박해람 2003.12.08 1176 221
946 고가도로 아래 - 김언 2003.07.09 1078 221
945 너 아직 거기 있어? - 김충규 2002.06.15 1336 221
944 내 후생을 기억함 - 이성렬 2006.03.07 1730 220
943 섀도라이팅 - 여태천 2006.02.14 1307 220
942 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982 220
941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505 220
940 풍림모텔 - 류외향 [1] 2005.08.08 1408 220
»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3] 2005.01.27 1331 220
938 그것이 사실일까 - 류수안 2004.10.13 1298 220
937 달의 눈물 - 함민복 [1] 2004.08.24 2187 220
936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2003.07.29 1129 220
935 낡은 침대 - 박해람 [2] 2006.07.22 1918 219
934 내리막길의 푸른 습기 - 이승원 2006.05.12 1562 219
933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932 천막 - 김수우 2005.09.24 1404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