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천막 - 김수우

2005.09.24 16:59

윤성택 조회 수:1404 추천:219

《붉은 사하라》/ 김수우/ 《애지》시인선 (근간)



        천막

        둥그렇게 바닥을 펴면 세상의 중심이 생긴다
        네 개의 나무기둥을 세우면 지상의 축이 팽팽해진다
        지붕을 펼쳐 얹으면 천막은 아침 신전이 된다
        어미에게서 상속받은 이 건축은
        새로 도달한 곳 어디든 인간을 낳고 신을 낳는다
        이 천막 안에서 아홉 번 태를 쏟았고
        수많은 낮과 밤을 지어 마음을 갈아 입혔으며
        그보다 더 많은 절망과 희망을 안아 차례차례 키웠으며
        그들은 각각 낙타를 길들이는 법
        고삐를 움키고 안전하게 사구를 넘는 법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몇 시간 행진하는 법을 익혔다
        매일 태어난 오래된 신화들이
        신성한 상징으로 늙는 동안
        날마다 식탁으로 돌아와 앉는 사하라는 무량하다
        배냇냄새 속 저승꽃 돋는 천막 한복판
        경계를 지우고 지운, 거인의 손바닥으로
        오늘도 그녀는 검은 젖을 꺼낸다
        이 우주를 물려받을 딸을 키운다
        

      
[감상]
사막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군요. 시집 제목이 말해주듯 시집 1부가 모두 사막과 관련된 시편들입니다. 몇 천 년 수분 없이 비약된 곳이 사막이지요. 그곳의 모래알은 그 옛날 숲이 소멸된 징표들입니다. 시 속에서는 <천막>을 중심축으로 사람의 일생이 지어졌다 허물어지고, 혹독한 조건을 견디는 삶이 계속됩니다. 천막 지붕을 모계사회의 <검은 젖>으로 환치시키는 말미 부분이 선명합니다. 큰 기온차로 분열하고 분열하는 붉은 사하라, 거기에 우리의 치열한 현실이 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51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 2005.10.06 1458 221
950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949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777 221
948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47 221
947 블랙박스 - 박해람 2003.12.08 1176 221
946 고가도로 아래 - 김언 2003.07.09 1079 221
945 너 아직 거기 있어? - 김충규 2002.06.15 1336 221
944 내 후생을 기억함 - 이성렬 2006.03.07 1730 220
943 섀도라이팅 - 여태천 2006.02.14 1307 220
942 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982 220
941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505 220
940 풍림모텔 - 류외향 [1] 2005.08.08 1408 220
939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3] 2005.01.27 1331 220
938 그것이 사실일까 - 류수안 2004.10.13 1298 220
937 달의 눈물 - 함민복 [1] 2004.08.24 2187 220
936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2003.07.29 1130 220
935 낡은 침대 - 박해람 [2] 2006.07.22 1918 219
934 내리막길의 푸른 습기 - 이승원 2006.05.12 1562 219
933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 천막 - 김수우 2005.09.24 1404 219